그간 인수한 업체들도 줄줄이 문 닫아
스타트업 투자 분위기 냉각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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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벤처 펀드에 잇따라 참여하며 스타트업 지분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동안 인수·합병(M&A)했던 업체가 네이버와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실패하면서 직접 인수보단 간접 투자를 선택한 것이란 분석이다. 일각에선 '직접 만드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이해진 전 의장의 성향 때문이란 평가도 나온다. 국내 IT업계 큰형님 격인 네이버마저 벤처기업 M&A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벤처 M&A 활성화가 요원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벤처 투자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다수의 벤처캐피탈(VC) 업체와 펀드 결성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달엔 모 대형 VC업체와 콘텐츠 관련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결성을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네이버는 지난해 400억원을 출자해 소프트뱅크벤처스와 결성한 벤처 펀드에 500억원을 추가 출자하기도 했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향후 5년간 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해당 투자금은 연구개발(R&D) 비용이나 벤처 펀드 출자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라며 "국내 벤처 기업을 직접 인수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진행했던 M&A에서 쓴 맛을 본 네이버가 벤처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 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네이버는 2008년까지 크고 작은 국내 벤처 기업을 인수했다. 하지만 인수 후 네이버와 시너지 효과를 낸 곳은 드물다. 자동 주소록 관리 서비스 업체인 쿠쿠박스(쿠쿠커뮤니케이션)는 인수 1년 만에 서비스가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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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네이버가 구글이나 아마존처럼 M&A를 통해 성장 동력을 찾지 않으려는 궁극적인 이유로 이해진 전 의장을 꼽는다. M&A를 꺼려하는 이 전 의장의 성향 때문에 네이버의 PMI(인수 후 통합) 역량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이해진 전 의장이 M&A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인수한 것만 봐도 결과가 좋지 않다 보니 M&A, 특히 국내 벤처 기업 인수는 아예 하지 말자는 생각도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네이버의 M&A는 사실상 인력 수혈"라며 "인수한 업체를 키우기보단 핵심 개발진을 데려다가 네이버에 앉혀두는 게 다수"라고 전했다.
개발 인력 확보 수단으로 M&A를 활용한 네이버로선 PMI 의지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미투데이를 개발한 박수만 대표, 쿠쿠박스를 창업한 형용준 대표, 윙버스·윙스푼의 김창욱 대표(現 스노우 대표)는 모두 창업한 업체를 네이버에 매각한 후 네이버로 자리를 옮긴 바 있다.
벤처 투자업계는 이 같은 네이버 행보가 아쉽다는 반응이다. 투자 분위기를 냉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벤처기업에서 출발한 네이버조차 스타트업 인수에 소극적이라면 어느 기업이 M&A에 나서겠느냐는 설명이다.
다른 VC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은 애초부터 벤처기업을 살 의지도 없고, 인수하더라도 내부 조직 문화를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에 잘 키울 수도 없다"며 "결국 네이버같이 벤처기업에 시작한 기업이 사줘야 하는데 인수 여력이 충분한 네이버부터 M&A를 꺼려하고 잘 못하니 누가 나서겠느냐"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라인(LINE)이 도쿄와 뉴욕 증시에 상장하며 성장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이해진 전 의장의 심중에도 변화가 생겼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라인은 네이버가 외부에서 인수한 업체는 아니지만, 첫눈 인수를 통해 합류한 신중호 라인 CGO(글로벌총괄책임자)가 개발했다.
또다른 VC업계 관계자는 "5년 넘게 네이버 내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라인이 해외에서 상장하고 네이버의 미래 먹거리가 된 것을 보면서 이해진 전 의장의 생각도 조금은 바뀌지 않았겠느냐"면서도 "최근 들어서도 다시 M&A할 회사를 찾는 분위기지만 해외 벤처기업에 관심이 더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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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6월 04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