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천재지변?'…아시아나 매각 무산 우려에 HDCㆍ산은 기싸움
입력 2020.03.02 07:00|수정 2020.03.03 09:35
    코로나 파장 속 무산 가능성도…무산 시 파장 불가피
    완충장치 필요한 HDC-발 빼려는 産銀 입장 차이 커
    결국 명분 싸움…”코로나 확산 따라 협상 구도 갈릴 듯”
    • 코로나 사태로 아시아나항공 M&A 무산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한 거래가 파국을 맞으면 매각자도 인수자도 그 파장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성사되도록 고심할 수밖에 없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중대한 사정변경 속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거래 조건을 얻어내길 바라야 할 상황이다. 반면 산업은행은 하루빨리 아시아나항공과의 관계를 끊고 싶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로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힘겨루기' 양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항공은 M&A 계약 후 2개월 만에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했다. 반일 감정이 사그라들기 전에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주력 노선이 모두 직격탄을 맞았다.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 지 예측이 어렵다보니 현대산업개발 내부에선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금 발을 빼는 편이 유리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 와 인수를 포기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계약서에는 '천재지변'(자연재해, 사회적재해)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우한 코로나 사태가 계약 철회를 주장할 요인인지는 불분명하다. 인수자 측에서도 이 문제로 법적 다툼으로 끌고 가봐야 실익이 많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없지 않다.

      그래도 발을 빼겠다면 계약금 2500억원은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거래를 무산시키려면 "2500억원보다 더 큰 손실이 예상된다" 라는 명분이 확실해야 한다. 하지만 직전의 시뮬레이션 결과조차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에선 객관적 근거를 대기 어렵다. 이에 따른 책임론과 배임 우려도 감안해야 한다.

      또 디벨로퍼인 현대산업개발은 정부의 인허가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성사시킨 몇 안되는 구조조정 사례인 아시아나항공 매각에서 발을 뺄 경우 정부에 밉보여 이런 저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산업은행도 고심이 적지 않을 상황이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금호고속에까지 금융지원을 약속하며 이번 M&A를 밀어 붙였다. 여기까지 와서 거래가 무산되면 산업은행이 이동걸 회장 체제에서 내세울 만한 최대 공적이 사라진다. 능력이 없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다시 떠안게 되면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산업은행 책임론이 불가피하다.

      결국 거래 무산은 가장 최후의 선택지에 해당된다. 현재 상황에서는 HDC와 산업은행 모두 최대한 거래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거래 조건이 바뀌는 등 '인수의 정당성'이 확보될 것이냐도 관심 사안이다.

      현대산업개발 내부에선 백가쟁명식 아이디어가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한 부정적 영향(MAE, material adverse effect)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에 맞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주가격 인하, 대주주 차등 감자, 채권단 출자전환 등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주 가격을 손대려면 계약 자체를 바꿔야 한다. 대주주 차등감자 안은 작년 거래 무산 시의 대책으로 거론되던 안이다. 출자전환은 은행의 거부감이 작지 않다.

      산업은행의 협조 융자 방안도 거론된다. 영구 전환사채(CB)와 차입금 상환 일정을 늦추거나 금리를 낮추는 등 조건을 변경하는 식이다. 당장의 대규모 현금 유출을 줄이면 손실에 대응할 여유가 생긴다. 현대산업개발은 산업은행 자금 활용을 꺼려왔지만 금융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구태여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대신 산업은행과 아시아나항공의 관계 절연이 늦춰진다.

      현대산업개발이 어느 안을 바라든 산업은행과 힘겨루기는 불가피하다.

      현대산업개발은 최근 아시아나항공 임원 면담을 전격 중단했다. 이에 '거래가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현재 면담은 재개됐는데 "언제든 거래가 무산될 수 있다"는 신호를 주고자 함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거래가 완료된 후엔 현대산업개발이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현대산업개발의 요청이 있더라도 산업은행이 어디까지 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미 1조6000억원의 거금을 들여 M&A를 지원했기 때문에 이후의 역할은 인수자가 해야 한다고 여길 수 있다. 기존보다 박한 조건으로 금융 지원에 나섰다간 대기업 특혜 논란을 걱정해야 한다. 코로나19 파장이 얼마나 확산하느냐에 따라 산업은행이 마지못해 움직일 명분이 만들어질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한 거래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M&A는 실상 정치적 성격이 강한 거래라 현대산업개발도 산업은행도 거래 무산 시 후폭풍이 클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 확산세에 따라 향후 현대산업개발과 산업은행의 협상 국면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과 산업은행은 거래 조건 변경이나 금융 지원 등과 관련한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