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워크 사태가 기업가치 의구심 증폭시켜
IPO 차질 예상…쿠팡 등 시점 가늠 힘들 듯
'성장'에서 '수익가능성'으로 가치 초점 이동
생태계 체질 개선 관점, '긍정적' 평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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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자 판단이 잘못(really bad)된 것이라고 크게 반성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창업자이자 세계 최대의 기술투자펀드인 비전펀드의 설립자 손정의 회장이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투자자 앞에 고개를 숙였다. 차량 공유업체인 우버, 공유오피스 위워크 투자 실패로 소프트뱅크는 14년 만에 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손 회장은 “이번 결산은 너덜너덜하다”라며 “태풍이라고 할까, 폭풍우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투자방식에 대한 변화를 주겠단 의사도 밝혔다. 5~7년내 순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겠단 계획이다.
손정의 회장의 ‘참회’는 국내 자본시장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1조원 가치의 스타트업, 유니콘 기업 10곳이 탄생했지만 이들의 기업가치에 대한 의구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앞으로 유니콘 기업에 대한 기업가치 산정 방식뿐 아니라 벤처캐피탈(VC) 투자 행태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모시장에서 ‘그들만의 리그’였던 벤처투자에 대해 자본시장의 냉정한 평가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손정의 회장의 비전펀드가 투자했다고 하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손 회장이 제시하는 가격이 곧 그 회사의 기업가치이고, 이 가치는 향후 몇 년안에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위워크 사태로 ‘손정의’라는 브랜드에 금이 갔다.
먼 나라 얘기로 들리지만 실상 이 여파는 빠르게 국내 유니콘 생태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당장 예정된 상장(IPO)의 차질이 예상된다. 쿠팡, 배달의민족, 토스는 물론 주관사를 선정한 블랭크코퍼레이션, 와디즈, 왓챠도 현재로선 상장 시점을 가늠하기 힘들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위워크 사태로 국내 유니콘 상장이 1~2년 이상 늦춰질 수 있다”라며 “현재 시장 상황에서 섣불리 IPO에 나섰다가 오히려 혹독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장 유니콘 기업가치 산정 방식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비전펀드가 글로벌 흥행 보증수표라면 국내에는 몇몇 VC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유니콘 탄생의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초기단계(early stage) 투자부터 후속 투자를 이끌어가면서 기업가치를 극대화(value creation)했다. 이들의 손을 몇번 거치면 스타트업들은 어느새 유니콘으로 탈바꿈했다. 이 방식은 비단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 실리콘벨리에서부터 유래한 모델로 주요 VC들은 초기 단계부터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하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린다.
일례로 5000억원의 자금을 투자받은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은 2011년 국내 VC 본엔젤스로부터 3억원을 투자받았다. 이후 알토스벤처스, 스톤브릿지, IMM으로부터 시리즈A,B 단계의 투자를 유치했다. 시리즈 C,D 단계 이후부턴 골드만삭스PIA, 중국 VC 힐하우스, 네이버,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국내외 굵직한 투자자들이 투자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배달의민족 기업가치는 3조원으로 불어났다. 시드머니(Seed Money)를 받은 지 불과 7년만에 신세계의 시가총액(2조6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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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몇몇 VC가 강력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후속 투자를 단행하면서 기업가치가 급속도로 불어나게 된다”라며 “시리즈 C,D 단계에선 이들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해외 투자 유치가 이뤄지면서 단숨에 유니콘이 되는 경로를 밟게 된다”라고 말했다.
기업가치 창출 배경에는 커대하게 커진 사모시장이 있다. 글로벌 유동성 과잉 상태에서 시중의 여유자금은 될 성 부른 스타트업으로 몰렸고, 이 자금은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단숨에 유니콘으로 키웠다. 저금리 구조 고착 속에서 '아이디어의 가치'가 '돈의 가치'를 뛰어 넘으면서 ▲믿을만한 창업자 ▲혁신적인 아이디어 ▲확장성을 보장하는 기술이 갖춰지면 순식간에 사모시장에서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위워크 사태로 이들이 만든 기업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질문은 그들만의 리그인 ‘사모시장’의 기업가치를 일반 다수의 투자자들이 ‘공모시장’에서 얼마나 인정해줄 수 있느냐다.
유니콘 기업과 차기 유니콘 기업이라 불리는 16곳 중에서 현재 순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은 6곳에 불과하다. 쿠팡의 적자는 매해 늘어나 지난해엔 영업손실이 1조원을 넘어섰다. 위메프, 야놀자, 토스(비바리퍼블리카) 모두 적자상태다. 매출극대화를 위한 의도된 적자라고 주장하지만, 시장에선 그들의 계획보다 심해지는 경쟁강도, 늘어나는 설비투자(CAPEX)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의도된 적자가 아닌, 생각보다 비용곡선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공모시장의 싸늘한 눈초리는 스타트업 전반의 경영방식에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창업자들은 투자를 받은 시점부터 어떻게 이익을 낼 지를 고민하고 시장에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회사 가치의 초점을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에 뒀다면 이제는 '그래서 돈은 벌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된 것이다.
VC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예고된다. 최근 몇 년 새 벤처 활성화 바람이 불었다. 덕분에 정부 돈을 받아 위험은 감수하지 않고 한자릿수 지분확보에 나서는 VC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벤처캐피탈 벨류에이션 방식의 허상이 드러났다.
정부에서 받은 돈을 기반으로 VC들이 면피성 투자를 단행하면서 스타트업 가치가 올라간 측면이 있다. 커머스, 핀테크, 인공지능(AI) 등 그때 그때마다 이슈가 되는 딜(Deal)을 따라 다니며 투자를 단행,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 이런 방식의 투자는 행여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내노라하는 VC들이 다 투자했으니깐 내 잘못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다. 그러다보니 VC들도 ‘성과보수’ 보다는 외형확장(AUM 확장)에만 목을 메는 상황이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운용수수료보단 성과 그 자체로 승부를 보는 VC들이 탄생해야 한다”라며 “정부에서도 이런 곳에 돈을 맡기는 풍토를 정착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의 대다수 VC들이 2%의 운용수수료, 20%의 성공보수로 운용되는데 반해 미국에선 운용수수료 0%, 성공보수 40%의 VC들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책임투자하겠다는 뜻이다.
스타트업의 상장시점에 변화도 불가피하다. 상당수 스타트업들이 사모시장을 통해 자금 조달을 선호하다 보니 IPO 시점이 점점 뒤고 밀리고 있다. 이를 받아줄 시중의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장을 고민하는 시점이 이전보다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대형 VC들은 투자에 나선 시점부터 상장을 고민하지 않으면 투자회수 계획 자체가 꼬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손정의 회장이 5년에서 7년내 순이익이 나는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말은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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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회장의 투자 실패가 국내 유니콘 생태계에는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서 문제가 터지기 전에 기업들의 가치창출과 VC들의 투자 행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공모시장 참여자들에게도 긍정적이란 평가가 많다. 유니콘 기업의 '상장은 곧 대박'이란 신화가 무너졌다. 앞으로 상장을 준비하는 유니콘 기업들은 이전보다 수익성 제고 전략을 신경써야 하는 동시에 투자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부담도 커졌다.
쿠팡처럼 이미 거대해진 유니콘 기업들은 언제 상장할 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런 회사들이 또다시 투자자들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기도 여의치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이 M&A 매물로 등장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이들이 구축해놓은 기반을 감안하면 현재의 기업가치를 다 인정받진 못하더라도 사업영역이 겹치는 대기업 전략적투자자(SI)가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비단 유니콘뿐 아니라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의 M&A 선호현상이 커질 수 있다. 해외에서 인정하는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라면 해외 M&A를 통해 창업자와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AI업체 수아랩에 투자한 네이버계열의 VC 스프링캠프는 시드머니 투자를 통해 200배의 투자수익을 거둔 것이 대표적인 최근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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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2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