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제한 완화 플랜 제시할 대한항공…쟁점은 결국 '운수권' 배분
입력 22.05.12 07:00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6개국 결합심사 진행중
美·中·EU 심사기조 최근 엄격…"경쟁제한 완화 플랜 제시하라"
중복 여객노선 정리 필요…항공사별 피해 타격 상이 수준 예상
  •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추진 중인 대한항공이 경쟁당국 대응에 힘쓰는 분위기다. 각 경쟁당국의 심사 기조가 최근 엄격해지면서 원활한 기업결합 승인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경쟁 제한 완화 플랜 제시가 필요해졌다. 특히 수익성과 연관이 큰 운수권 배분이 어떻게 이뤄질지가 주요 쟁점사항으로 떠올랐다. 

    대한항공은 현재 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영국·호주 등 6개 경쟁당국으로부터 결합 심사를 받고 있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미국 등 경쟁당국과 매일같이 자료를 주고받고 있다"며 "경쟁제한 완화 계획 제출 등 6개국가에 동시다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경쟁당국들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반대할 사유가 크지 않다 보는 게 업계 중론이다. 양사 시장 점유율이 전체 글로벌 시장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경쟁 제한성이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한항공도 전체 항공노선 가운데 양사 합병으로 독과점이 발생하는 노선은 미미하단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EU 경쟁당국이 양사 합병 심의를 엄격하게 접근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특히 EU의 경우 지금 당장 경쟁제한성을 제거할 수 있도록 경쟁 항공사들이 운수권·슬롯을 나눠 가져야 기업결합 승인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3월 양사 합병 심의 수준을 '간편'에서 '심화'로 격상했고 양사 점유율이 높은 중국도 한중 노선 독과점을 우려하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국내 공정거래위원회도 기업결합을 잠정 승인하는 대신 까다로운 수준의 구조적 조치를 부과한 상황이다. 공정위는 일부 운수권(정부가 배분하는 운항 권리)과 슬롯(공항 이착륙 시간)을 반납하는 조건을 달았다. 국제선은 중복노선 65개 중 26개, 국내선은 20개 중 14개 노선이 이에 해당됐다. 

  • 합병 승인 과정이 엄격해지면서 대한항공에 요구될 시정조치 수준도 까다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도 원활한 결합승인을 위해 경쟁당국들에 납득될 만한 경쟁 제한 완화 플랜을 선제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최대 쟁점사항은 운수권 배분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산하 LCC들(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 간 겹치는 노선을 정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가 가장 큰 이슈"라며 "각 노선마다 수익성이 상이한 만큼 노항 정리에 따라 항공사별 타격 수준도 크게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한항공이 국내 LCC의 수용 능력 부재를 근거로 장거리 노선은 외국 항공사에 내어줄 가능성에 주목한다. 대형 기종이 없는 국내 LCC들은 장거리 노선 수용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만큼 양사 보유 장거리 운수권은 결국 외항사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대한항공도 국내 다른 사업자에 운수권을 배분해 자사 경쟁력을 빼앗기는 대신 외항사로의 분배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경우 해외에 국내 경쟁력을 빼앗기게 되는 격이 될 수 있어 공정위가 좌시하진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공정위는 통합 법인 운수권을 회수해 국내 LCC들에 재분배, 노선 독점 문제를 선제에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제주항공·티웨이항공·플라이강원·에어프레미아·에어로케이 등 국내 다른 LCC들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들 중 가장 수용 여력이 큰 제주항공에 최대 수혜가 돌아갈 것이란 분석이 많다. LCC 사이에선 "오랫동안 고착화된 독과점 노선에 대해 산업구조 재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통합 LCC(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들은 수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대한항공이 합병 주체가 되는 만큼 이들은 운수권 배분 주도권을 갖기 어려울 수 있는 데다 독점 예방 차원에서 정부의 운수권 배분으로부터 소외될 가능성도 크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운수권 배분에 나선 국토교통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독점 노선이었던 인천~울란바토르(몽골) 분배에서 통합 LCC들은 제외시켰다. 

    경쟁 제한 완화 플랜 제시 과정이 '제살 깎아먹기' 양상일 수밖에 없는 만큼 통합 전부터 시너지 효과가 퇴색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항공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운수권 및 슬롯은 항공사의 중요 무형자산으로, 이전 시 손실 규모가 막대할 수 있다보니 플랜에 따라 항공사별 대립이 첨예해질 수 있다. 합병까지 수년여가 걸리는 데다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운수권 배분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