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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하지만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일류주의, 일등주의, 제일주의 등 '최고의 최고'를 추구하던 이미지는 많이 옅어졌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글로벌 기업간 경쟁 강도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는데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인베스트조선은 시장 참여자들과 함께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의 문제점과 미래를 시리즈로 진단한다. [편집자주]
삼성전자는 이달 조직을 개편하며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겠다는 메시지에 한층 더 무게를 실었다. 지난해 8월 미등기 임원 이재용 회장이 사면 복권 후 내놓은 한 마디가 1년이 지난 시점에 새 컨트롤타워를 꾸리는 형태로 구체화한 모양새다. 세상에 '없는' 기술이란 표현이 삼성전자가 아직도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다 보니 시장에선 모호한 거버넌스와 불투명한 리더십이 복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시장에선 얼마 전 열린 삼성전자 DX 부문 타운홀미팅이 회자하고 있다.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내부 후기에는 한 임원이 "아이폰은 어린애들이나 선망하는 것, 비이성적 선호도"라고 발언한 것으로 나온다. 직원이 젊은 세대의 경쟁사 제품 선호에 대한 대책을 묻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온 터라 삼성전자 내부는 물론 시장에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적절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넘어서 경쟁사 제품에 대한 고객 선호를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꽤 충격적"이라며 "밖에서 보자면 애플에 대한 열등감이 단적으로 드러난 장면으로 비친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애플 생태계 '록인' 효과는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세트 사업을 통합해 DX 부문을 출범시킨 데 이어 자체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등 대응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나 방향성은 보이지 않고 있다. 갤럭시 시리즈의 경쟁력 약화를 넘어 스마트폰 이후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담아낼 새 그릇이 모호하다는 얘기다.
컨설팅펌 한 관계자는 "애플, 테슬라, 엔비디아 등이 XR이나 로보틱스, 모빌리티에서 다음 생태계를 준비하고 있는데 삼성은 갤럭시 이후가 안 보인다"라며 "자체 디바이스가 없으면 이들에 부품을 대는 공급사로 머물러야 한다. 지난 2010년 삼성전자가 갤럭시로 아이폰에 맞불을 놔야 했던 상황과 거의 같다"라고 지적했다.
DX 부문 부진은 기기 시장에서 리더십을 놓치는 것 외 반도체 1등 전략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애플은 자사 기기에만 쓰이는 반도체 부문 매출액만 따로 떼어내도 글로벌 반도체 기업 8위에 들 정도 입지를 구축했다.
진행 중인 AI 반도체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가 서버 학습용 AI 반도체를 제패한 상황에서 추론 시장이 다음 격전지로 꼽히는데 고객사도 직접 진출한 전장이다. 삼성전자가 우수한 범용 AI 반도체를 내놓더라도 이를 받아줄 자체 기기 시장이 없다면 경쟁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구도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선 차라리 삼성전자가 지금이라도 TSMC와 같은 방향으로 뱃머리를 트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고객사와 직접 기기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 갑(甲)에 가까운 공급사 지위를 노리는 것이다. 인텔은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 이후 종합반도체기업(IDM) 2.0을 내걸고 이 같은 로드맵을 따르고 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스마트폰 시대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애플과 시장을 양분하던 리더십이 AI·로보틱스·모빌리티 시대 들어 깨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라며 "너무 많은 전장에서 고객사와 직접 경쟁하면서 성과를 내기 벅찬 구도다. 파운드리 분사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거론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전자에선 이 같은 중대 결정을 내릴 마땅한 주체가 불분명하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중대 결정을 내린다면 결국 이재용 회장이 나서야 하는데, 그러면 삼성전자의 거버넌스는 또 퇴행하게 된다"라며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이사회 자율 경영'을 내걸면서도 사업지원 TF를 따로 두고 회사는 이재용 회장 메시지만 부각시키면서 거버넌스가 엉망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면 복권 이후 이 회장이 복귀하면서 여전히 '특명'과 같은 표현이 버젓이 내걸리지만 엄밀히 말해 이 회장은 상법상 미등기 임원이다. 삼성전자의 의사 결정을 좌우할 수 없고, 공식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위치에 있다. 주주가 주주총회를 거쳐 권한을 위임한 건 이사회 경영진인데, 이미 삼성전자 스스로 지난 2017년 재차 이사회 중심 자율 경영을 약속한 바 있다.
이사회 경영진 역시 삼성전자의 미래를 책임질 만한 메시지를 내놓기 어려워 보인다. 대외적으로 삼성전자의 최고 경영진은 한종희 DX부문 총괄 부회장과 경계현 DS부문 사장, 노태문 MX사업부장 사장까지 3명의 사내이사지만 시장에선 사업지원 TF 수장인 정현호 부회장보다 무게감이 떨어지는 인사로 통한다.
이달 신설한 미래기술사무국이 이 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 예로 거론된다. 단순히 경쟁사보다 미래 준비가 덜 됐다는 점을 넘어 누가 마이크를 쥐어야 할지도 정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애플이나 엔비디아, TSMC, 인텔 등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사의 경우 CEO나 창업자가 직접 시장과 소통하며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동일한 거버넌스를 구축하곤 있으나 리더십 대신 나온 건 선행 리서치 조직이다.
이 회장 복귀 이후 사업지원 TF 역시 역할과 위상이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2021년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가석방된 후 사업지원 TF를 이끌던 정현호 당시 사장은 연말 부회장으로 승진했지만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이중' 거버넌스 체제를 유지하는 것 외에 뚜렷한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5년 정중동을 이어 온 정현호 부회장의 사업지원 TF는 현재도 항상 여러 보고를 받고는 있지만 딱히 하는 일이 없는 실정"이라며 "사업지원 TF가 뭔가 본다고 하면 되는 것이 없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내부에서도 '사업지연 TF'라는 자조적 우스개가 회자할 정도"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을 오래 경험한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선 현재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이 과거 미래전략실 해체 결정에서부터 시작됐단 목소리도 심심찮게 전해진다. 미전실을 해체했어야 할 불가피성은 인정하더라도, 사업지원 TF가 미전실 시절 삼성 특유의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역량은 계승하지 못한 탓이다.
결국 삼성전자의 불투명한 거버넌스가 리더십 분산을 넘어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공동 책임은 무책임'이란 말처럼 선진화한 거버넌스를 구축하면서도 실제론 '누구도 책임지기 어려운 구조' 또는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이사회 경영진 아닌 '오너' 한 마디에 1년 지나 '조직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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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대신 '리서치 조직'…중대 결정 내릴 주체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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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3년 08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