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사태가 드러낸 '투자처' K엔터의 한계
입력 24.05.23 07:00
계속되는 하이브 vs 어도어 신경전
"하이브는 사태 제대로 매듭지어야"
실망한 시장…"투자자를 뭐로 알고"
다시 떠오른 '엔터=시스템?' 질문
  • 하이브가 엔터사 최초로 '대기업' 타이틀을 달게 됐다. 최근 소속 레이블 어도와의 갈등으로 잡음이 계속되면서 축포보다 우려가 앞선다. 엔터업계 전반의 고질적 시스템 리스크(위험)가 다시금 떠오르면서 투자자들은 하이브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매듭짓냐에 따라 시장의 엔터업계에 대한 시각도 달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가오는 31일 어도어의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하이브와 어도어의 경영진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어도어의 지분 80%를 보유한 대주주 하이브는 이번 임시 주총에서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해임시킬 예정이다. 민 대표는 하이브를 상대로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난 17일 가처분 소송 심문이 진행됐고 임시 주총 이전에 가처분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 하이브는 이번 사태 수습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미 하이브는 어도어의 새로운 경영진 찾기에 나섰다. 내부에서 지원을 받는 한편 외부에서도 적절한 인사들을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 경우 하이브가 항고를 하거나 새로운 증거를 확보해 임시주총을 다시 소집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하이브 사태가 엔터 투자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공개된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내용, 계약과 관련된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박지원 하이브 대표가 나눈 ‘사적 대화’ 등을 고려하면 아직도 엔터업계에서 '계약서'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운 평가다. 투자업계에서는 소위 '룸살롱 경영'을 해온 엔터사가 규모가 커지고 양지(?)로 올라오면서 겪는 성장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형 PE관계자는 “엔터 투자에는 엔터사 경영진이 투자자들과도 이야기가 통하고, (우리와 다르게) 창작자들도 잘 관리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며 “차라리 직접 돈을 대서 회사를 차리는 것이 편한데, 굳이 투자하는 이유는 엔터업이 사람 간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약서가 통하지 않고 내분이 일어나고 회사의 주가나 평판에 영향이 간다면 문제가 크다”며 “이번을 계기로 하이브가 이러한 관행을 제대로 매듭짓지 않으면 비슷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거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향후 엔터 투자는 머뭇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브 내분 사태로 엔터업계에 대한 불신이 커진 가운데 최근 타 엔터사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기관들의 엔터주 매도세가 거세졌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전년 대비 20% 하락한 영업이익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하루 만에 13% 급락하는 등 엔터주 하락세가 이어졌다.

    하이브 사태뿐 아니라 고질적으로 엔터업계에서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시장의 불신은 커졌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산업’의 전망은 밝게 보고 있다. 성장성도 좋고, 규모가 커질수록 여러 산업과의 시너지도 가능하다. 국내 엔터산업이 영화산업과 같이 하나의 ‘산업군’이 됐다는 점도 인정된다. 다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앞에 놓인 과제가 많다는 우려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하이브나 어도어 측 모두 투자자를 생각했다면 지금의 상황으로 사태를 키우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이브 측의 경영 미흡뿐 아니라, 민희진 대표도 프로듀서로의 능력을 떠나 경영자로서는 업계에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하이브 사태를 계기로 엔터사의 시스템 리스크 이슈가 다시 떠오른 셈이다. 빅히트 시절 방탄소년단(BTS) 인기가 고공행진하던 2018~2019년, 한국의 엔터산업 정체성이 ‘시스템’인지 ‘아티스트’인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당시 ‘빅 3사(SM·JYP·YG)’도 슈퍼스타 매출 의존도가 상당했다. 매출 다변화를 위해 이것저것 사업을 확장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회사를 지탱하는 것이 시스템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하이브는 상장에 나서면서 ‘라이프스타일플랫폼’ 정체성을 강조했다. 상장 이후에도 M&A를 통해 덩치를 키웠다. 후속 아이돌들이 자리 잡고 BTS 의존도를 낮추는 등 전략이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하이브 소속아이돌 르세라핌의 라이브 실력이 논란이 되는 등 하이브가 ‘공장형 아이돌’ 기조에 앞장선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K팝 팬덤에서는 각 엔터사가 경쟁하며 색깔이 확실했던 시절이 그립다는 의견이 많다. 민희진 대표와 방시혁 의장이 갈등하게 된 계기도 빌리프랩의 ‘아일릿’이 어도어의 ‘뉴진스’와 유사한 콘셉트라는 점부터 시작됐다. ‘하이브 최초 걸그룹’으로 데뷔한 르세라핌은 당시 데뷔 콘셉트포토에서 지나친 성상품화 논란이 있었다. 걸그룹 팬덤도 여성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시장 이해도가 낮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체제는 이번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민희진의 어도어가 멀티레이블 취지에 가장 적합한 곳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를 떠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뉴진스맘’ 없는 뉴진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가 ‘시스템 vs 사람’의 답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뉴진스가 포화 아이돌 시장에서 성공을 한 건 전에 없는 신선함을 주면서다. 멀티레이블의 존재 의의는 각자의 색깔을 가진 레이블들이 개성을 보일 때 완성된다는 평이다. 

    엔터·미디어 업계에 투자한 한 투자사 관계자는 “엔터·미디어 업계는 기본적으로 부침이 있는 분야기 때문에 각각의 레이블이 창작물에선 독자 노선을 가야 리스크 분산이 된다”며 “경영상으로는 관리가 이뤄지되 각 레이블이 색깔이 다르지 않다면 멀티레이블의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