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IB 뱅커의 PE진입에 전폭적인 지위 대우로 화제
로젠택배 매매계약 CVC 이행거부로 국제중재까지
양사 회사 평판 대결로 비화 우려...'성공적이라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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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 한국사무소의 '상징'이었던 임석정 (Steve Lim) 대표. 그가 2015년 유럽 최대 사모펀드(PEF) CVC캐피탈파트너스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 IB나 PE종사자들의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첫째, CVC에서 어떤 지위와 대우를 보장 받을까. 둘째, CVC의 저 유명한 아시아 헤드 '로이 콴'(Roy Kuan)과 깐깐하기로 소문난 CVC의 투자문화를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파트너ㆍ체어맨 타이틀을 단 첫 CVC 한국대표
첫번째 관심사에는 배경이 있었다.
우선 임석정 대표의 중량감이 너무 컸다. 1960년생으로, 34세 때부터 20여년간 JP모건 서울사무소 헤드를 역임한 1세대 IB 뱅커였다. 업계 종사자 대부분이 그의 후배 뻘이다. 반면 CVC가 아무리 큰 회사라해도 한국대표 직급은 그리 높지 않았다. 전임 CVC한국대표였던 허석준 대표(Charles Huh)만 봐도 은행 계열인 스탠다드차타드 PE에서 MD(Managing Director)를 달고 있다가 CVC에서 시니어 MD를 달았다. 임석정 대표에게는 급이 맞지 않는 자리였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CVC 홍콩사무소는 이보다 높은 직급의 아태부문 파트너(Partner)로 홍민기(Brian Hong) 대표가 2006년부터 오랫동안 재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CVC로 오기전 9년간 일한 곳이 JP모건, 한국사무소에서 모셨던 상사가 바로 임석정 대표였다. 이 그림대로라면 전 직장 대표이사가 새 직장의 부하직원으로 오게 되면서 CVC의 직급체계가 된통 꼬일 판이었다.
CVC는 임석정 대표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하면서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임석정 대표는 CVC 한국대표로 부임하며 최초로 '파트너'직급을 받았다. 또 '체어맨' (Chairman of korea)라는 별도 타이틀도 달았다. CVC캐피탈파트너스에 소속된 전 세계 40명의 '파트너'(매니징 파트너 제외)들의 서브 타이틀을 하나하나 살펴봐도 '특정국가 또는 부문의 수장' (즉, Head of China 혹은 Head of Latin America)정도에 그친다. 지역도 아닌, 국가이름 옆에 '체어맨'이 붙은 사람은 임석정 대표가 유일하다.
여기에 임 대표를 도와 일할 MD직급의 멤버도 새로 뽑았다. 크레디트스위스 및 SC PE를 거쳐 칼라일에서 디렉터 직급으로 있던 정명훈 전무를 초빙, MD직급을 주고 임석정 대표와 일하게 했다. 임석정 대표를 위해 '회장' 자리를 만든 모양새가 되다보니 투자업계에서는 "얼마나 기대가 크길래.."라는 얘기가 나올 법 했다.
◆"CVC? 좋은 회사지만 깐깐해서..."
두번째 관심사에도 이유가 있었다.
CVC란 이름은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는 거물 중의 거물로 통한다. KKRㆍ블랙스톤ㆍ워버그 핀커스ㆍ칼라일ㆍ아폴로 등과 이름을 나란히 한다. 영국 사모펀드 전문지 PEI(Private Equity International)가 2016년에 뽑은 전 세계 PEF 운용사 순위(PEI 300)에서는 CVC(7위)가 TPG(9위)보다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글로벌 집계다보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MBK파트너스도 여기서는 51위에 그친다.
이런 CVC였지만 한국에서 존재감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투자실패로 꼽히는 사례도 적지 않았고, CVC 자체적으로 투자검토를 진행해다가 중도포기한 경우도 다수였다. 99년 투자한 위니아만도 (현 대유위니아)는 무려 15년이나 지나 투자금을 회수했을 정도다.
매각자가 CVC만 꼭 찍어내 숏리스트에서 빼버리는 일도 있었다. '사모펀드들의 전쟁'으로 불렸던 2015년 홈플러스 매각의 경우. 칼라일ㆍ어피니티ㆍMBK파트너스ㆍ골드만PIA 등은 다 숏리스트에 뽑혔는데 유일하게 본입찰 참가 자격을 받지 못한 회사가 CVC였다. KKR도 최초에는 제외됐지만 다시 참가자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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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에 대해 투자업계에서는 여러 원인이 거론됐다. 가장 잦은 언급이 '깐깐한 투자심사' 문화다. 즉 "필요하다면 높게 가격을 써낸다"로 대변되는 M&A 경쟁입찰 문화가 CVC 내부에서 승인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 "그 가격을 써낼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되돌아온다는 의미다. CVC에서 일본, 한국 등 아시아 부문을 총괄하는 헤드이자 매니징 파트너인 로이 콴의 투자 승인이 매우 까다롭다는 언급도 업계에서 오랫동안 전해진 얘기다.
전임 허석준 CVC 한국대표의 퇴사가 결정된 이후. CVC에서는 PE업계 고위 관계자 여럿에게 한국대표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한 이들이 있었다. 역시 CVC의 이런 문화에 대한 우려가 한 몫했다는 평가다. CVC로서는 무게감 있는 인사가 한국대표를 맡아주길 원했지만 그런 인물들 가운데 CVC한국대표 자리에 가길 원치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CVC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 PE업계 출신이 아닌, 20년간 IB만 일해온 임석정 대표였다.
◆동양매직도...우리은행도... 결국 사연 많은 로젠택배로
기대가 컸으니 보여줘야 할게 많았다. 하지만 CVC의 모습은 그 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작년 9월 우리은행 과점주주 매각에서는 무려 18곳의 후보 가운데 단 2곳만 본입찰 참가자격을 못받았는데 역시 CVC가 그 중 하나였다. 동양매직 인수전에도 공을 들였지만 결국 완주하지 않았다. 이를 대신해 그나마 투자한 곳이 최근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로젠택배다.
이 로젠택배 매각에서도 '해프닝'이 만만치 않았다.
로젠택배는 작년 초 매각에 실패한 이력이 있었다. 글로벌 물류사인 DHL과 UPS에 KKRㆍ어피니티ㆍ스틱인베스트먼트 그리고 CVC까지 뛰어들었다. 하지만 로젠택배 매각자인 베어링 PEA가 원하는 가격이 높다는 평가로 인해 후보들이 모두 떠났다. 그러다 7월 들어서야 다시 매각이 재개됐다.
이때 매각주관사는 사모펀드 후보와 접촉, '경쟁입찰'이 아닌 '개별협상'을 진행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CVC가 첫 대상이었다. 마침 매각주관사가 CVC 임석정 회장의 친정집인 JP모건이다보니 그랬을 것이라는 평가들이 쏟아졌다. 1대1 거래를 선호하는 PEF로서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기대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CVC 이외에 다른 PEF도 하나씩 추가로 초청됐다. 어피니티도 초빙됐고, 뒤이어 칼라일도 나타났다. 대부분 "개별협상이라면서? 다른 후보가 있어?"라는 언짢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CVC가 자존심이 상할 상황이었고 "협상을 취소하겠다", "신뢰가 깨졌다" 등의 반응도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베어링PEA와 CVC는 간신히 3300억원에 로젠택배를 사고 팔기로 합의했다. 시기적으로보면 임석정 대표가 CVC로 옮긴 지 딱 1년 만의 결과물이었다.
◆로젠택배 실적증빙을 둘러싼 국제중재...'쟝 살라타 vs 로이콴'
그러나 매매계약 체결 3개월만에 CVC가 먼저 나서 "거래를 취소하겠다"라고 나왔다. 유례 없는 대응에 베어링PEA도 놀랐고 이렇다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양사는 결국 홍콩국제중재원(Hong kong International Arbitration Center)에 중재를 신청하기로 했다. 양사가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거래종결 전에 문제가 생기면 국제중재원에 판결을 넘긴다"라고 합의한 사항에 따라 진행되는 내역으로 알려진다. 이 경우 중재원 결과가 나오면 '집행판결', 즉 '강제집행을 해도 된다'는 판결의 효력을 지니게 된다. 각각 법무법인 세종과 태평양을 내세워 중재가 진행되며 3월~4월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다.
계약서까지 써놓고 뒤늦게 '못 사겠다'라고 CVC가 나온 이유는 여럿이지만 가장 크게 문제 삼은 것은 로젠택배의 '실적'(Earning)로 전해진다.
양사는 매매계약 체결 직전인 2016년 8월까지의 로젠택배의 실적이 '어느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라는 점을 일종의 거래종결 선행조건(Closing conditions)를 달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숫자가 충족되어야 거래를 진행한다는 의미다. 베어링PEA측은 이에 합당하는 수치를 제공했고 CVC는 이를 받아들였으며 각각 법무법인 세종과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선임, 계약서를 썼다. CVC는 그런데 나중에 살펴보니 베어링이 제공한 숫자에 오류가 있고 수치를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의미다.
PE업계에서는 드러난 주장만 놓고보면 CVC의 입장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일단 협상과정에서 CVC도 직접 로젠택배에 대한 실사를 진행, 실적에 대한 조사와 수치점검 및 반박이 가능했다. 그리고 김앤장까지 써가며 이를 조항에 담고 계약서를 썼다는 게 이유다. '초보'도 아니고, M&A업계 최고 프로페셔널로 통하는 글로벌PEF들이 이런 오류를 몰라서 계약을 취소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
이번 사례처럼 매각회사의 실적을 거래종결 선행요건으로 매매계약서에 삽입하는 것 자체도 업계에서는 드문 일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거래가 중간에 파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는 '계약금'(Break-up Fee)도 불과 500만달러에 불과한 사실이 여러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상식적으로 3300억원 거래를 하면서 내건 계약금이 단 1.5% 수준인 50억원 안팎이라는 것 자체가 화제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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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로젠택배 매각 성사 여부가 아닌, 글로벌 PE간 자존심 싸움으로 비화됐다고 보고 있다.
CVC도 거물이지만 베어링PEA 역시 글로벌 투자시장에서는 막강한 회사로 꼽힌다.
원래 영국계인 베어링 에쿼티 파트너스(Baring Private Equity Partners Ltd)의 아시아 투자 기구였다가 2000년 아예 독립회사로 차려졌다. 이를 이끌던 쟝 살라타(Jean Eric Salata)가 창업자로, 그 또한 홍콩 투자시장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러니 이번 중재는 '베이링PEA vs CVC', 그리고 '쟝 살라타 vs 로이 콴'이라는 홍콩 투자업계 거물간 대결로 비춰지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베어링PEA는 올해 펀드레이징을 준비 중이다. 경쟁자는 대부분 맞부딪치기를 꺼리는 KKR. 또 이상훈 전 모건스탠리 PE대표를 데려가고 7호 아시아펀드 (Asia VII)를 준비하는 TPG와도 펀드레이징에서 맞붙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국제중재는 어쨌든 희소식이 못된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이번 중재를 놓고 다음과 같은 평도 내놓고 있다. "어느 회사가 이기든, 누군가는 피를 보게 된다"
◆KFC 매각도 그닥......"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이 와중에 CVC는 2014년 두산으로부터 1000억원 가량에 인수한 KFC(법인명 '에스알에스코리아') 매각을 태핑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연히 투자업계 시각은 "CVC 한국사무소의 고육지책 아니냐"로 귀결된다.
KFC는 매년 영업이익이 급감, 자칫 영업적자까지 우려되는 추세다. 2013년 116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이듬해 69억원으로 반토막 가까이 떨어졌다. 지난 2015년 영업이익은 겨우 11억원에, 작년은 적자 가능성이 거론된다. 작년 말 갑작스런 KFC 대표이사 교체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적 뿐만 아니다. '염브랜즈'(Yum! Brands)와의 협상 이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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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코리아는 CVC가 대주주지만, KFC 본사는 피자헛, 타코벨 등을 보유한 미국 패스트푸드 기업 염브랜즈 소유다. 업계에서는 '간섭쟁이'로 평가받는 염브랜즈는 지사 매각 과정에 일일이 관여하며 새 인수자에게도 마케팅 비용ㆍ향후 직영점 개통 계획 등에 대해 많은 요구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KFC코리아가 새 주인을 찾는다고 해도 가격 할인은 물론, 염브랜즈와의 지난한 협상이 걸림돌이다. 일각에서는 한때 같은 식구였던 버거킹을 비교대상으로 거론하지만 본사가 뉴욕 사모펀드 3G캐피탈 소유인 버거킹은 KFC와 비교하기에는 차원이 다른 회사라는 게 업계 공통된 평가다.
결국 KFC 매각이 진행된다해도 급감한 상각전이익(EBITDA)과 본사 이슈를 감안하면 KFC가 'CVC한국의 성과'로 자리잡는 일도 만만치 않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 .
상황이 이쯤되다보니 업계에서는 임석정 대표의 PE산업 진입에 대한 평가도 슬슬 나오고 있다.
"M&A 실무에서 손을 뗀지 오래되었을터인데 대표이사가 계약서까지 직접 챙겨야 하는 PE 대표는 쉽지 않은 시도였다"는 언급이 가장 많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평가들도 많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성공적'이라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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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2월 03일 10:1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