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 비전 제시 요구받는 통신업계 CEO
여전히 발목잡는 '정치 리스크'…"1년 CEO" 우려 극복은 과제
-
"KT는 더이상 통신회사가 아니다, 2015년 비(非)통신 매출 18조 달성하겠다"(2011년 이석채 KT 회장)
"2020년까지 비통신 매출 비중을 20%~30%로 키우겠다"(2017년 황창규 KT 회장)
황창규 KT회장이 ‘비(非)통신 강화’를 목표로 2기 출범을 알렸다. 취임초 ‘통신 본업 회복’을 내세웠다가 이제 다음 임기에는 비통신 부문에서 성장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내세웠다.
시장에선 '황창규 2기'가 1기보다 더 큰 도전을 맞이할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연임과 지배구조 이슈가 정치권 외풍과 연계됐던 KT로서는 이런 방향이 중·장기적 비전으로 자리잡을 지 의문시되기도 한다. M&A를 통한 비통신부문 강화가 임기 이후 새 경영진에게 ‘공격 대상’이 돼온 전임 회장들의 사례도 언급되고 있다
지난달 KT CEO추천위원회는 황 회장에 대한 면접 심사를 진행한 뒤 차기 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이어 이사회가 황 회장의 추천을 승인하면서,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 승인 절차를 거치면 3년 연임 절차를 마치게 된다.
황 회장은 이사회 결정 이후 첫 공식 석상인 '2017 전략워크숍'을 통해 현재 전체 매출의 10% 수준인 비통신사업 매출 비중을 2020년까지 2~3배 이상 높이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지난 2014년 취임 직후 강조한 통신 본업 집중 기조와 다소 다른 전략을 보이면서 실질적인 2기 구상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SKT·LG유플러스 등 경쟁사가 비통신 부문 강화에 이미 발을 뗀 상황에서, KT의 새 행보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경영진이 바뀌고, 새로운 임기 첫 해마다 전임 회장의 성과에 대한 정리가 이어져 왔던 ‘KT의 법칙’을 극복할 수 있을지를 묻는 회의적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사실 비통신 부문 강화는 전임 이석채 회장 당시 제시된 KT의 최대 화두였다. 그러다 황창규 회장의 부임 후, 전임 회장의 ‘비통신 강화’ 기조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지난 2014년 부임 직후 인사를 통해 이석채 회장 시절 KT의 M&A를 총괄해온 전략기획실 임원 대부분을 교체했다. 대신 KT에서 ‘통신업’ 경험을 쌓은 인사를 요직에 승진시키면서 전임 회장과의 ‘차별화’에 나섰다. 그리고는 KT렌탈·KT캐피탈 등 비통신 계열사의 매각도 강행해 재무구조 개선에 속도를 냈다.
한 증권사 통신담당 연구원은 “물론 이석채 전 회장 시절 재무구조를 신경 쓰지 않은 방만한 확장은 문제지만, BC카드 인수·KT렌탈 인수 등 일부 거래는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았다”라며 “‘통신 본업 집중’으로는 임기를 별 탈 없이 보낼 수 있지만, M&A를 통한 비통신 부분 확장은 언제든 후임 CEO에게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보니 내부에서도 ‘한국통신으로 남자’는 보신주의가 강한 점이 KT의 근본적 한계”라고 지적했다.
당장 경쟁사들은 그룹의 지원을 바탕으로 발빠른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SKT는 지주사 SK㈜에서 그룹 M&A를 총괄해온 박정호 사장이 올해 사장으로 부임해 힘을 싣고 있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도 부임 이전 LG화학에서 그룹차원의 신사업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이끈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 통신업 관계자는 "통신 3사간 일정 수준의 점유율이 정해져있는 유·무선 통신사업에선 CEO에게 요구된 역량은 정부와 ‘가교’ 역할을 잘 하는 정도로 충분했다“라며 ”하지만 당장 수요가 없는 신사업에 투자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하는 상황에선 단기 손실이 나더라도 회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경영진의 역량이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경영 연속성' 측면에서 고질적 한계를 가진 KT의 지배구조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고 있다.
KT도 황창규 회장에게 연임 이후 투명하고 독립적인 지배구조 구축을 계약상 조건으로 명시하는 등 시장 우려 해소에 나서고 있다. CEO추천위원회가 추천에 앞서 기관투자가 및 증권가 애널리스트들과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는 등 시장과의 접촉을 넓혔다는 점도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다. 하지만 사내·외 이사진의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주주들이 사내·외 이사진의 결정을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의 설치 등 구체적 해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시장이 KT 회장 인사에 요구했던 최우선순위는 이사진의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였지, 다양한 목소리 수렴이 아니었다”라며 “이미 현직인 황창규 회장 단독 추천으로 내정된 상황에서 명분을 쌓는 데 불과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한 기관투자자는 "황창규 회장의 인간됨과 성과와 별개로, 최순실 게이트와 연계돼 다음 정권에서 교체될 ‘1년 인사’일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KT 투자자들의 가장 큰 우려"라며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인물로 ‘최선’을 찾느니, 아직 정부 임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알려지지 않은 낙하산 인사가 부임하는 ‘최악’을 피하자는 점에서 황 회장의 연임이 낫다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2월 09일 17:3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