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재점화…신 회장 경영력 어필 기회
-
롯데그룹의 상황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형제의 난’으로 일컬어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이 끝나기도 전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각종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신동주 전 부회장이 대대적인 실탄 마련에 나서면서 형제의 난은 제 2막을 예고하고 있다.
안의 시끄러움은 여전한데 밖에서도 골칫거리가 생겼다. 롯데가 성주 골프장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부지로 국방부에 제공하기로 한 이후 중국의 제재가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부터 랴오닝성 선양의 롯데월드 건설을 중단시켰고, 이제는 관영 언론을 통해 롯데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당장 신경 쓰이는 것은 유통사업이다. 지난해 4분기, 부진한 업황 속에서도 롯데쇼핑은 선전했지만 해외에선 여전히 부진했다. 특히 중국에서 온라인 유통 채널의 시장 점유율이 상승하면서 중국 대형 슈퍼마켓은 역성장했다.
2013년 이후 롯데쇼핑 매출에서 해외사업과 중국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0%, 5%다. 해외사업 총매출액의 50%가 중국에서 발생하다 보니 해외사업 리스크 역시 중국에 집중돼 있다. 중국부문의 턴어라운드가 해외사업 실적개선의 선결 과제로 꼽히지만 사드 문제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그룹 차원에서 보면 중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선 비유통 사업의 역량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롯데그룹 비금융부문의 사업구조를 살펴보면 매출 기준으로 소매유통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화학(18%), 기타(14%), 음식료(12%), 호텔·레저(8%), 건설·부동산(7%)이 뒤를 잇고 있다.
음식료, 호텔·레저 역시 소매유통과 마찬가지로 사드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화학과 건설, 물류 파트 등 비유통사업에 대한 확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그 중심에는 롯데케미칼이 있다. 롯데케미칼은 업황 호조와 실적 개선으로 1년만에 ‘안정적’ 전망을 다시 받았다. 과거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가 신용도의 발목을 잡았지만 영업현금흐름이 개선되며 조(兆) 단위의 투자금을 자체 충당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세미나에서 “롯데케미칼이 내년까지 약 2조3000억원의 투자 예정 금액이 있지만 이 기간 EBITDA(상각전영업이익)가 5조원가량으로 기대돼 여유가 있다”며 “업황 변동에 대한 대비도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에서 ‘롯데’로 간판을 바꾼 롯데글로벌로지스도 주목 대상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중국 최대 택배업체 윈다와 직구 물류 업무협약을 체결한데 이어 중국 내 신선물류(콜드체인) 사업 확장을 위해 현지업체 ZM로지스틱스와 손을 잡았다. 올해 롯데로지스틱스와의 합병도 예정돼 있어 글로벌 시장 보폭을 한층 넓힐 것으로 보인다.
호남석유화학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신동빈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처음 시동을 건 것 역시 비유통 사업의 확장이었고, 그룹의 규모가 커진 것도 10년간의 성과 덕분이었다. 신 회장은 공공연하게 비유통 사업 확장 의지를 내비쳤다. 유통사업과의 매출 비중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비유통 사업에서 인수합병(M&A), 신규 투자 등 확장 정책을 공고히 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은행(IB) 업계의 예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동빈 회장 개인 차원에서도 비유통 사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할 경우 신 회장이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경영 능력이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지분 매입 경쟁에 집중할 수 있는데 반해 신동빈 회장은 그룹 경영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경영권 분쟁에서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신 회장 입장에선 결국 성과를 앞세워 본인이 경영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주들을 설득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비유통 사업의 확장 지속은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황각규 롯데쇼핑 사장을 초대 경영혁신실장에 앉히고, 각 사업부 수장들을 임명하는 그룹 임원 인사까지 마무리되면서 신동빈 회장은 경영권 강화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경영권 분쟁은 지리멸렬하게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 와중에 그룹은 국내에선 추락한 신인도를 끌어올리고, 해외에선 경쟁국들의 제재에 맞서야 하는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비유통 사업 확장은 그 위기 속에서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2월 23일 17:4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