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가 정몽구 회장을 다시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정 회장은 2000년 현대차그룹 대표이사 회장직에 오른 이후 17년 간의 집권을 이어가게 됐다. 이번 재선임을 두고 일부 투자자들은 ‘쇄신’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현대차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17일 주주총회 전부터 정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두고 시장 의견은 분분했다. 국내 의결권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는 주주들에게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 2008년과 2011년 2차례나 정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했던 국민연금은 이번 주총에서 기권했다.
현대차는 국내시장 점유율 하락, 해외시장 판매부진 등 대내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업이익은 2012년부터 꾸준히 하락세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5조1935억원. 전년(5조1935억원) 대비로는 18.3% 감소했고, 2010년(5조9185억원)이후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판매율은 떨어지고 있다. 수입차 판매가 확대에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분위기지만, 국산 경쟁업체들과의 비교에서도 뒤쳐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르노삼성(39%), 한국GM(14%), 쌍용자동차(4%)는 판매량이 증가했다. 현대-기아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지난 2014년을 기점으로 70%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다.
해외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시장은 성장이 둔화했다. 중국의 완성차 업체들은 빠르게 성장한다. 러시아와 브라질 등과 같은 신흥국가의 수익성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도요타(TOYOTA)와 혼다(HONDA)와 같은 일본 기업의 기술개발과 이미지개선 속도는 빠르다.
위기는 진행형이다. 혁신을 요구하는 시장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시장의 의문은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정몽구 회장이 과연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 수 있겠냐는 점이다.
아직도 현대차그룹에서 정 회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투자자들은 지난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보였던 정 회장의 모습에 경영능력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정 회장은 여전히 주요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직접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에 정통한 국내 금융사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특성상 오너의 사내이사 선임만을 두고 논란을 삼기는 어렵다”면서도 “이제껏 보여왔던 현대차의 모습을 볼 때 정 회장과 최측근 경영진들이 자율주행, 디자인 혁신 등 빠르게 변화하는 자동차 산업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이에 맞춘 경영능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라고 의견을 내놓았다.
세계시장에서 완성차 업체들은 엄청난 혁신 속도를 보이고 있다. 토요타는 지속적인 적자와 대규모 리콜 사태로 신인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발 빠른 투자로 이미 전기차·스마트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이미 자리잡은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산업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현대차 못지 않은 오너의 힘이 강력한 폴크스바겐(Volkswagen)그룹도 각 브랜드별 독립경영과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시대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아우디(AUDI)를 중심으로 한 인공지능 및 자율주행 등 미래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앞선 기업으로 평가 받는다.
반면 현대차의 변화에 발맞춘 대응은 상대적으로 둔하다. 현대-기아차라는 서로 다른 브랜드와 제네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활용해 차별화된 기술개발과 판매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현대차의 현재 경영 시스템에선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다.
물론 현대차도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이 중심이다. 자율주행 및 수소 전기차 등 신 사업부분을 이끄는 정 부회장의 성과가 가시화하고 시장의 인정을 받기까진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 부회장이 기아차 사장을 맡고 있던 당시, 피터슈라이더 디자인총괄사장을 영입하며 발휘한 경영능력이 현대차에 온 이후부턴 잠잠하다는 평가다.
국내 금융지주사 한 연구원은 “남들은 날아가는데 현대차는 걷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수준으로 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비해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만큼 성과가 가시화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현대차가 내놓은 것은 대규모 배당계획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사업적인 성과를 내고 미래를 위한 투자에 집중하기 보다 투자자들 달래기에 우선인 모습에 실망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지배구조 개편에 집착한 나머지 현재의 투자자들에만 집중할 경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골든타임’ 또한 놓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3월 21일 16:44 게재]
입력 2017.03.24 07:00|수정 2017.03.24 15:57
[취재노트] 막강한 영향력 여전...투자자들 "혁신의지 와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