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지주사 전환 검토 발표 후 이달 주총서 “어렵다”
총수 관련 이슈에 손도 못 돼…외국인투자자 간섭 여지 넓혀버린 꼴
국내 투자자 불만도 가중…”삼성그룹, 지배구조 테마주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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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에 주주가치 제고 요청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그 해 11월 삼성은 지주회사 전환 검토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 빠르게 밝혔다. 지주사 전환에는 약 6개월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발표가 있은지 4개월도 지나지 않아 삼성의 발언은 거짓이 됐다. 지난 24일 주주총회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존재해 지금으로서는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상 지주회사 전환 중단을 선언했다.
결국 원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제공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그룹은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이번 삼성그룹 주총에서 이 부회장과 관련된 사안들은 손도 대지 못했다.
미래전략실이라는 비선의 컨트롤타워는 사라졌지만 ‘총수의 재가(裁可)’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함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지배구조 이슈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투자 포인트다. 그래서 철저한 정보의 내부통제와 속도 있는 프로세스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삼성은 여기서 약점을 드러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면서 지배구조의 약점을 드러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 등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외의 승계 작업 과정에서 발생된 사안으로 검찰에 구속된 상태다.
이미 벌어진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의구심을 가질 만 하다.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삼성그룹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총수 부재시 발생할 수 있는 사안들에 대비하기 위한 ‘플랜B’는 준비되지 않은 것일까.
현재로만 놓고 보면 삼성그룹은 전혀 대비하지 못한 듯 하다. 우왕좌왕, 허둥지둥하는 모습뿐이다. 이는 익히 알던 삼성의 모습이 아니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보여 준 몇 번의 실책은 금융시장에서 삼성을 양치기 소년으로 불리는 꼴로 만들었다. 기회만 엿보고 있는 외국계 헤지펀드들에 좋은 먹잇감을 줬다. 삼성의 미전실 해체로 할 말 없어진 엘리엇은 또 할 말이 생겼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총수 구속 사태에 이은 지주사 전환 번복은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삼성그룹에 대한 얼마 남지 않은 신뢰성마저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한 번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인상을 남기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간섭 여지를 넓혀버린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국내 투자자들의 마음은 더 답답하다. 그래도 한국 주식시장의 대장주는 ‘삼성’이기 때문에 참고 기다려줬다. 그런데 그룹 스스로 불확실성을 키워버리면서 이제는 못 참겠다는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삼성주'가 지배구조 테마주로 변질됐다는 자조적인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국내 증권사인 하이투자증권도 이와 관련된 리포트를 발표해 성토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그룹이 정보의 내부통제(보안)성 때문에 검토단계에서 이런 식으로 공시 한 이후 아니면 말고 식의 발표는 신중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주주들을 조롱하는 처사”라며 “이런 식으로 하려고 삼성SDS 상장, 제일모직 상장,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등이 이뤄졌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렇게 되면 이재용 부회장은 다시 전문경영인과 오너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경영인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지금의 체제를 굳이 깰 필요가 없다. 오너로서 경영까지 하겠다고 하면 지배구조 전환을 본격화하면서 앞으로 '진정' 새로워 질 삼성에 대한 기약을 해야 한다.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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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3월 28일 10:3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