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사업보단 이슈에 주목"
외국계 헤지펀드 공세에도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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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계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테마주로 전락하고 있다. 지배구조개편에 대한 기대감에 주가는 급등락을 반복하지만, 정작 투자자들은 회사의 사업적인 성과와 펀더멘털에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 시가총액 3위인 현대자동차는 외국계 투자은행(IB) 보고서 발표에 주가가 급등했다. 지난 20일 골드만삭스가 보고서를 통해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을 언급하자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 등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현대차는 모건스탠리, 메릴린치를 비롯한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1200억원가량의 순매수가 이어졌다. 주가는 장중 17만1000원의 52주 신고가를 기록했고 시가총액 기준 2위인 SK하이닉스를 앞서기도 했다. 국내 증권사도 반응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목표주가를 20만원 이상으로 조정했다.
현대차의 실적은 지난 2012년부터 꾸준히 하향세다. 지난해엔 영업이익 5조20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18% 이상 감소했다. 2010년(5조9185억원) 이후 6년 만에 최저치다. 국내시장 점유율 하락과 해외시장 판매부진 탓이다. 에어백 사고와 같은 크고 작은 기술 결함 사태로 인한 신뢰도 하락, 노조와의 끊임 없는 갈등 또한 국내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주가 또한 내리막이었다. 현대차의 주가는 2014년 최고치인 25만4000원을 기록한 이후 현재는 16만원을 밑돌고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을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의 화살이 현대차를 향하면서 투자자들은 주목하기 시작했고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정점이 됐다.
이 같은 상황은 지속되지 않았다. 골드만삭스가 현대차의 주가가 목표주가에 도달했다는 이유로 3일만에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조정하자 주가는 5일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현대모비스, 기아차도 마찬가지였다. 투자자들이 현대차를 장기 투자처로 바라보기보단 단기적인 이슈, 특히 지배구조와 관련한 호재성 이슈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현대차 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를 장기적인 투자처로 바라보고 투자하는 기관들은 많지 않다"며 "현재 현대차에 투자가 몰리는 이유는 다른 글로벌 오토메이커에 비해 주식이 싸다는 점과 지배구조개편으로 인한 수혜를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클 뿐 사업적인 성장성에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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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또한 마찬가지다. 코스피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그룹 계열사들은 지배구조개편에 대한 발표와 철회, 이에 따라 주가는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제기돼 온 지난해부터 삼성물산은 수혜주로 꾸준히 각광 받았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 이후에도 이렇다 할 시너지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시장의 기대감은 높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가 삼성물산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고, 삼성물산을 통해 주요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물산이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하더라도) 삼성물산과의 합병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자 삼성물산의 주가는 급락했다. 당일에만 8.6%이상 하락했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일제히 주주총회를 열었던 지난 24일 삼성물산의 주가는 다시 한번 크게 요동쳤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이 당분간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삼성물산과 삼성SDS의 주가가 급락했다. 삼성물산은 삼성SDS의 물류사업부와 합병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이것이 무산되자 투자자들의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또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상장과정에서의 적법성, 회계처리의 적합성 등에 대한 특별감리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외국인들의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다. 주가 또한 하락세로 돌아섰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룹 대장주들이 지배구조 개편 이슈로 하루에만 10% 내외의 등락을 지속하는 것은 기업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이 사업보다는 이슈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특히 (헤지펀드를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장기적인 투자처로 바라보기 보단 단기적 이슈로 인한 차익을 노리는 놀이터 수준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투자자들이 한국기업의 펀더멘탈보다 이슈에 집중하는 현상이 지속되면 기업들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세에 더 몰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은 한국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펀더멘탈보다 기술적 매매에 집중하고 ▲기업의 기본적인 사업과 수익에 변화가 없음에도 주식의 급등락이 반복된다는 점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제한과 같은 규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가 비교적 유리한 점 등이 외국계 헤지펀드가 한국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헤지펀드를 비롯한) 외국계 자금이 국내 기업의 펀더멘털을 보고 투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보더라도 지배구조 이슈가 사업적인 전망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외국계 투자자들의 가장 좋은 타깃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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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4월 0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