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성 부여 목적"…고객사 기술 유출 우려 등 배경 거론
분리 결정 시점 두고 '사업정리' 우려도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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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부문의 분사를 결정했다. D램·낸드 등 메모리반도체 사업 중심의 SK하이닉스에서 향후 성장성이 큰 파운드리 사업을 분리해 독립성 확보 및 경쟁력 강화를 꾀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안팎에서는 전격적인 분리 결정 시기에 의문 섞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직 기술력 및 고객 확보가 미비한 사업 특성상 내부육성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비주력 사업을 떼내고 일부 구조조정에 나서려는 수순 아니냐는 시각이다.
SK하이닉스는 이달 중순 파운드리 사업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분사 설명회를 연 후 내부 직원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신설 자회사의 이름은 'SK하이닉스시스템IC(가칭)'로 SK하이닉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될 예정이다. 충북 청주에 위치한 웨이퍼 공장(M8)이 자산으로 편입된다.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부문 매출 비중은 전체 사업에서 미미한 수준이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파운드리부문 매출은 약 1200억원으로 SK하이닉스 전체 매출의 1%가 안 된다. 영업이익은 수년간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전격적인 분사 결정에 대해 업계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배경으로 꼽는다. 파운드리 사업은 설비를 갖추지 않은 다수 고객(팹리스 업체)으로부터 수주를 받아 제품을 공급하는 '다품종 소량 생산'을 특징으로 한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설비 투자를 늘린 후, 동일 규격의 제품을 쏟아내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와는 성격이 다르다.
반도체 고객사 입장에선 경쟁사인 SK하이닉스 내부에 사업부가 있으면 기술유출 우려 등으로 수주 확대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기밀유지조항(NDA) 체결 등 일정 정도 보호장치가 있지만, 회사를 분리해 고객의 우려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등 일부 업체들도 내부에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사업부를 분리해서 운영하는 점도 같은 배경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고객사의 '기밀'을 우려해 분리하기에는 SK하이닉스 파운드리 사업의 기술역량 및 영업망이 아직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향후 SK하이닉스가 육성 의지가 있는지 불투명하다는 입장이다.
분사가 결정된 파운드리 사업부의 주력 사업은 디스플레이구동드라이버IC(DDI)·전력관리칩(PMIC)·CMOS이미지센서(CIS) 등이다. 현재 가장 큰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은 DDI다. LG그룹 설계업체인 실리콘웍스에서 수주받아 LG디스플레이 LCD패널로 공급한다. 업계관계자들은 이미 가격 경쟁이 시작된 LCD사업 특성상 평균판매가격(ASP) 및 수익성, 향후 성장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역량을 키우고 있는 CIS내에서도 성장성을 보이는 고화소 제품 생산은 이전되지 않고 SK하이닉스가 맡아 이천 M10 설비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1990년대 후반 설립해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던 M8설비를 지난 2010년 파운드리 설비로 전환하면서 위탁생산 사업에 발을 들였다. 본격적으로 인력을 충원하며 사업 육성에 나선 건 최근 2~3년에 지나지 않는다. 수주 사업인 파운드리 특성상 고객군 확보 및 기술력 측면에서 오랜 시간 신뢰를 쌓는 기간이 필요한 점을 반영하면, 내부 육성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위탁생산 특성상 주요 반도체 고객들에게 일정 정도 신뢰를 갖추고, 영업망과 기술 경쟁력이 있어야 분사를 해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직 의미 있는 규모도, 기술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진 분사 결정 시기는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최근 반도체 호황을 맞아 실적이 회복된 파운드리 업체 동부하이텍도 지금처럼 아날로그반도체 제품 분야에서 수익을 내기까지 13여년간 고생하며 수업료를 내왔다”라며 “먹거리 기반조차 없어 적자를 기록하는 사업부를 ‘단기간에 떼어내 키우겠다’는 전략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내부 갈등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현재 SK하이닉스 파운드리사업부 소속 직원들은 생산직과 기술사무직을 합쳐 1000여명이다. 사내에선 노조가 굳건한 생산직 사원은 SK하이닉스에 남고, 약 300여명의 기술사무직을 중심으로 자회사로의 인력 이동이 있을 것이란 불안감도 팽배한 상황이다.
다른 증권사 IT담당 애널리스트는 "파운드리를 육성해 본격적으로 키운다기보다는 갈길이 바쁜 메모리반도체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견이 더 솔직해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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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4월 27일 13:2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