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상황에 따른 전략 변화도 관측…치킨게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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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반도체를 두고 글로벌 업체 간의 인수 경쟁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한 발짝 떨어진 삼성전자가 ‘꽃놀이패’를 쥐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 시장, 특히 3D낸드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격자인 도시바의 몰락으로 독주체제를 굳혔다는 평가다.
삼성전자가 도시바 매각 이후 판도 변화에 대응 전략을 세울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시장 참여자가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일정 점유율을 유지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기존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화권 기업 등 새로운 플레이어가 인수할 경우 삼성전자가 치킨게임을 통해 낸드 부문에서 진입장벽을 쌓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도시바의 반도체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둘러싼 인수전은 국가간 합종연횡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컨소시엄 외에 미국 웨스턴디지털(WD), 미국 IT기업 브로드컴과 사모펀드(PEF) 실버레이크간 컨소시엄, 일본 정책투자은행(DBJ)·민관펀드 산업혁신기구(INCJ)와 KKR간 미·일 연합, 마지막으로 대만 홍하이 등 인수 후보간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매각대상은 도시바메모리의 주식 1000주로, 인수 후 재상장도 예고돼 투자 수익을 노리는 재무적투자자(FI)의 참여도 활발히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K그룹은 INCJ와 공동인수가 무산된 이후 베인캐피탈 등 FI와 컨소시엄 구성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SK측에서 자체적으로 약 10조원을 투자해 501주(50.1%) 이상 경영권을 확보하고, 나머지 지분을 FI들과 공동인수하는 방향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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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금지법상 제약으로 일찌감치 인수전에서 배제된 삼성전자는 이와 무관하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해 1분기엔 반도체부문에서만 영업이익률 40%를 넘겼다. 64단 3D낸드는 현재 전 세계에서 단독으로 양산에 성공해 독점 공급하고 있다. 낸드 수요는 올해도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하지만, 사실상 웃돈을 줘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몰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평택공장 3D낸드 설비를 가동해 기존 월 16만장 규모 생산능력을 두 배 가까이 늘릴 예정이다.
유력한 경쟁자였던 도시바가 스스로 몰락하면서 삼성전자의 독주체제도 길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낸드 시장 점유율은 37.1%(지난해 4분기 기준)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뒤를 쫓던 도시바(18.3%)가 도태되면서 설비를 공동 운영하는 WD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각각 4, 5위권에 위치한 마이크론·SK하이닉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유력 후보 중 어느 곳이 도시바를 인수하더라도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도시바의 본격적인 3D낸드 투자 집행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시바는 위기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 3년간 약 17조원을 들여 2D낸드 설비를 3D낸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최대 30조원까지 거론되는 인수 금액을 고려했을 때 인수자가 투자까지 예정대로 집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다. 여기에 단기 투자 차익 실현을 노리는 사모펀드 특성상 중·장기적 로드맵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낸드에 필수적으로 투입돼야 할 12인치 노광 장비 분야를 독점하는 네덜란드 ASML사로부터 설비 확보를 하려면 발주부터 18개월이 걸리는데, 도시바가 지금 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으로 기회가 넘어갈 수 있다”라며 “뒤늦게 정상화가 돼 돈이 있더라도 설비투자를 적기에 할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기존 플레이어들의 추격을 대비해 일찌감치 96단 3D낸드 등 후속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3D낸드는 단수가 높아질수록 성능과 전력효율이 높아지고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 양산목표를 내놓았지만, SK하이닉스가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72단 제품 양산 계획을 세운 만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20년 양산 계획을 세운 128단 3D낸드 개발 로드맵도 당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도시바 인수전 이후 삼성전자의 대응전략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홍하이·브로드컴 등 메모리반도체 분야 신규 진입자가 인수할 경우 삼성전자가 다시 한 번 ‘치킨게임’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 분야 모두 세계 시장 선두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 ‘4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이 대표적인 지표다.
한 증권사 IT담당 연구원은 “삼성전자 입장에선 기존 시장 참여업체가 도태되면서 향후 중국 자본에 매각되는 상황이 유일한 리스크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독주 기회를 늦추며 다른 업체들에 기회를 준 측면이 있다”며 “위협이 되는 신규 참여자가 진입할 경우 기존 수익성 중심 전략에서 물량 공세로 다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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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5월 0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