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표 대결 치열해지고 견제 세력이 경영진 참여 가능
지주회사 요건 강화 '부담'…기업들 경영권 타격 '좌불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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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하며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됐다. '재벌개혁'을 앞세운 경제민주화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까닭이다.
당장 지난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파행으로 논의가 중단된 상법 개정안의 재논의가 점쳐지고 있다. 현재 발의돼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 내용 상당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일치한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경영권의 핵심인 '이사회'에 대한 외부의 견제력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커지게 된다. 현행 상법 아래선 지분 과반을 가진 최대주주가 사실상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 전원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만, 개정안 통과 이후엔 불가능해진다.
개정안에 담긴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집중투표제가 전면 도입되면 소수주주를 대변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의 추천이 있을 경우 이들 중 1명 이상을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돼있다.
국내 굴지의 제조회사인 삼성전자 이사로 주주 대표 혹은 노동자 대표가 선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획일적이고 폐쇄적'이라고 평가한 삼성전자 이사회에 '견제 세력'이 '경영진'으로서 참여하게 되는 모양새가 된다. 폐쇄적 조직 문화로 유명한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상법 개정 앞에서는 이사회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당장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와 소액주주간 표 대결이 팽팽하게 이뤄질 수 있다. '거수기 사외이사'도 보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기 주총에서 치열한 표 대결이 '보통'이고, 논란없는 이사 선임이 '예외'적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금융지주회사 설립 가능성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삼성생명은 자사주 10.21%, 2조4000억여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 자사주가 추후 인적분할을 통한 금융지주회사 설립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해왔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사주 매입→인적 분할→현물출자라는 '공식'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 및 최대주주 경영권 강화가 불가능해진다.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이 금지되는 까닭이다.
금융지주회사 전환의 시기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현행 법규 아래에서 대규모 자사주는 삼성생명 지배구조 개편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핵심 옵션이었다. 상법이 개정되면 이 자사주는 지배구조 개편엔 큰 도움이 안되고, 당장 자본만 깎아먹는 존재로 돌변한다.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일반지주회사 제도 역시 정비가 이뤄질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반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요건과 자회사 지분 보유 요건 강화를 약속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200%까지 허용하고, 자회사 지분을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만 보유하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7년 이전까진 부채비율 100%, 자회사 지분율 상장사 30%·비상장사 50% 규제가 적용됐다.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규제를 푼 것이다. 지주회사 규제를 다시 강화한다면 2007년 이전 규제를 다시 적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언급된다.
이 경우 SK㈜가 답답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SK㈜의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에 대한 지분율은 25.22%다. 지금은 규제기준을 충족하고 있지만, 기준이 강화되면 추가 취득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현재 시가총액 기준, SK텔레콤 지분 5%를 늘리는 데 드는 비용은 1조원에 육박한다.
CJ그룹 역시 영향이 불가피하다. 두 개의 자회사를 통해 각각 20.08%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CJ대한통운에 대한 지배구조를 손질해야할 가능성이 크다.
부채비율 제한이 강화되면 중견그룹 지주회사들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삼양식품의 모회사인 내츄럴삼양, 동원그룹의 중간지주회사인 동원시스템즈, ㈜코오롱 등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이 100%를 넘는다. 셀트리온홀딩스와 하이트진로홀딩스, ㈜삼표 등은 부채비율이 100%에 육박하고 있다.
새 정부는 순환출자 해소 유도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재계에서 가장 복잡한 지배구조를 보유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부담도 계속될 전망이다.
상생과 비정규직 보호를 내세운 '을지로위원회'의 확대 편성도 롯데그룹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란 지적이다. 유통업이 핵심 사업인 롯데로선 '갑질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계열사인 롯데홈쇼핑이 2014년 갑질논란에 휩싸였고, 올해 초엔 롯데시네마 아르바이트 근로자 임금 체불을 두고 을지로위원회가 지급을 촉구하기도 했다.
역시 개정안에 포함된 다중대표소송제는 계열사 대부분을 완전자회사해 운영하고 있는 대형 금융지주회사들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행 상법으로는 비상장 자회사에 대해 모회사 소수주주들의 견제가 불가능하지만, 다중대표소송제가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까닭이다.
이밖에도 계열공익법인 지배력 규제 강화, 스튜어드십코드 실효성 개선 등 재계에서 난색을 표해온 여러 개혁 정책이 실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간 일부 기업들은 공익재단을 설립해 경영권 승계에 활용해왔다. 일반공익법인의 경우 5%, 성실공익법인의 경우 10%까지 지분 증여시 세금을 면제하는 예외규정을 이용한 것이다. 지분을 공익법인에 증여한 뒤, 가족이나 최측근을 이사장에 앉혀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새 정부에선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주식 취득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고삐를 쥘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회에는 출연자 등 특수관계인이 임원 또는 대주주로 있는 회사의 주식은 공익법인이 취득할 수 없도록 하는 공익법인법 개정안이 제출돼있다.
스튜어드십코드 실효성 개선 역시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연기금 등 투자자들이 '주주총회 거수기'에서 벗어나 주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핵심수단으로 꼽힌다.
지난 1월 공식 도입됐으나, 국민연금 등 대형 기관들이 가입을 주저하며 거의 사문화된 상황이다. 연기금 의무가입이나 가입 기관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실효성을 키우면, 최대주주에 대한 견제력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문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 관련 공약 상당부분이 법 개정 사항이라 국회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부각된만큼 입법상황과는 별개로 기업 스스로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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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5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