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적기'라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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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을 맞아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경신해가는 석유화학사들이 앞다퉈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최근 회사채 시장에 뛰어든 LG화학에 역대 최대규모 투자금이 몰린 ‘잭팟’이 터지면서 시장에도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업계에선 만기 도래하는 채권의 차환은 물론 향후 인수합병(M&A), 대규모 설비 투자 등 자금 소요를 앞둔 회사들이 앞다퉈 회사채 시장을 찾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내 부정적 변수가 도래하기 직전까지 자금조달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금호석유화학(A-), 롯데정밀화학(A+)은 각각 700억원(만기 2년), 500억원(만기 3년) 규모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주관사 선정을 마친 후 내달 초 발행을 목표하고 있다.
올해 들어 회사채 발행에 나선 한솔케미칼(A-), 한화케미칼(A+), 한화토탈(AA-), SKC(A) 등 화학사들도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적표를 받았다. 모두 희망 물량을 채웠고, 일부 업체들은 증액 발행에도 성공했다. 이자 비용도 예년보다 대폭 감소했다.
각 화학사들의 연내 자금 조달 수요는 이어질 전망이다. 롯데케미칼(AA+), SK종합화학(AA), 한화케미칼, 여천NCC(A+)는 적게는 500억원, 많게는 2000억원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돌아온다.
석화업체는 최근 채권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 특성상 언제든 실적이 고꾸라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량한 실적, 양호한 재무 상황에도 투자자 모집이 쉽지 않았다. 올해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화케미칼의 성공적 발행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했지만, 올해는 발행 금액의 9배 가까운 수요가 몰렸다. 기업이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뭉칫돈이 몰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2015년 시작된 역대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이 약 3년여간 쌓이며 투자자들의 우려가 누그러졌다고 설명했다. 각 화학사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재무 부담을 줄여오면서 투자자들에게 하향 사이클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줬다는 평가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회사채 시장 상황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시장이 경직되며 떠났던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큰 기관투자가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투자 심리가 안정을 찾으면서 'AA'등급 이상의 우량 회사는 물론 'A'급 회사로도 온기가 퍼지고 있다.
크레딧 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해운·건설 다음 위험 업종은 화학·철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있었지만, 화학사들이 재작년부터 꾸준히 좋은 실적을 쌓아왔다”라며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올해 이후 다소 실적이 꺾이더라도 워낙 누적된 실적이 좋아 신용도가 하향될 정도로 크게 회사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신뢰가 쌓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산업 내 변화가 시작되는 점은 변수다. 올해 하반기 이후 미국내 에탄크래커(ECC) 기반 설비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될 전망이다. 지난해 전체 수요의 약 4% 수준에 달하는 신규 물량이 공급될 예정이다. ECC 기반 제품은 국내 화학사들이 사용하는 납사크래커(NCC) 기반 제품 대비 가격경쟁력에서도 유리하다. 각 신용평가사들이 화학사들의 양호한 실적·개선된 재무지표에도 선뜻 등급 상향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업계 내외에서도 시장변화를 주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최근 회사채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증권신고서 정정공시를 통해 미국의 ECC 설비 가동 등 ‘각국의 설비증설로 인한 경쟁 심화’를 핵심 사업위험으로 적시했다.
각 신용평가사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리포트를 통해 "화학 산업의 업황이 현재 사이클 상 정점에 있으며, 올해 하반기 이후 하락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업체들의 올해 실적은 전년 대비 저하되며, 내년에는 실적 하락폭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대외 변수로 인해 올해 각 화학사들이 자금조달에 고삐를 당길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각 산업에 큰 변수들이 도래하기 직전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하기엔 지금이 최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한 채권 시장 관계자는 "최근 들어 각 화학사들이 예년대비 채권 발행을 위해 각 신평사에 사전 등급 평가를 요청해 온 사례가 늘고 있다"라며 "규정상 각 사의 실적발표 기간엔 채권 발행을 못하게 돼 있다보니 2분기 실적 발표 직전이나 직후 각 화학사들이 앞다퉈 자금조달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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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5월 28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