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의 67%인 102곳이 해당
부채비율 강화 등 '첩첩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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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지주회사 개혁이 본격화하면 일반 지주회사 절반 이상이 직접 규제 대상이 될 전망이다. 기업별로 규제에 발맞춘 대규모 자금 소요가 예상되는 가운데, 비교적 자금사정이 넉넉한 대기업 일부를 제외한 지주회사들의 자금 마련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달부턴 지주회사의 자산 기준 요건이 기존 1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새롭게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자산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기존 5000억원 미만의 자산을 보유한 지주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지주회사 제외 신고를 하거나 10년 내로 자산규모를 늘려야 한다.
현재 금융지주회사를 제외한 일반 지주회사 총 152곳 중 67%에 해당하는 102곳이 5000억원 미만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정부가 전환요건을 완화한 2007년 이후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한 기업들이다. 2006년 31곳이던 지주회사는 지난해 말 5배 가까이 늘었지만, 요건이 강화됨에 따라 이 같은 추세는 둔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가장 큰 변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의 경제력 집중 등을 방지하는 방안으로 지주회사 개혁을 강조해 왔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은 지주회사 규제 강화 내용이 담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정기국회 최우선 처리 법안으로 확정한 상태다. 이번 정부가 어느 정부보다 기업들에 개혁 의지가 강한 만큼 법안 개정이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도 높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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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는 부채비율 200% 미만일 경우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했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엔 부채비율 규제를 100% 미만으로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경우 17곳의 기업이 직접 규제대상이 된다. 코오롱·동원시스템즈 등 중견그룹과 셀트리온홀딩스·JW홀딩스·한국콜마홀딩스 등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해당한다.
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은 상장사는 20%에서 30%로, 비상장사는 40%에서 50%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특수목적법인(SPC)을 제외한 145곳의 지주회사 중 절반가량인 58곳은 추가로 자회사 및 손자회사 지분을 사들여야 한다. 대상이 되는 상장사는 총 36곳, 비상장사는 75곳이다.
대기업 중에선 SK그룹과 CJ그룹이 대표적이다.
지주회사인 SK㈜는 자회사인 SK텔레콤 지분을 25.2% 보유하고,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지분 20% 확보하고 있다. 지분율 규제가 본격화할 경우 이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5조원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CJ그룹은 CJ대한통운의 지배구조 정리가 불가피하다. CJ제일제당과 KX홀딩스를 통해 CJ대한통운 지분을 각각 20%씩 보유하고 있는데, 이 지분을 한 계열사로 몰아주는 방안 또는 각각 10%씩 추가로 인수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5000억원 이상의 자금 소요가 발생한다.
2015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한솔홀딩스는 지분율 규제 강화 시 풀어야 할 과제가 가장 많은 기업 중 하나다. 비상장기업의 지분율 요건은 모두 충족하고 있지만 한솔홈데코와 한솔테크닉스를 비롯한 상장사 4곳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부채비율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약·바이오 업체은 이중고가 예상된다. 셀트리온홀딩스가 향후 지분율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약 1조3000억원이 필요하고 코오롱은 코오롱생명과학을, 종근당홀딩스는 종근당 지분 확대를 위해 각각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된다. 콜마홀딩스, 코스맥스비티아이,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한진칼도 자회사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과거 지배구조 단순화와 각종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대거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했다"며 "현재 일부 기업을 제외하곤 개정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실제 사업적 또는 재무적으로 탄탄한 곳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주회사들이 규제의 향방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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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이렇지만, 대부분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넉넉지 않다. 특히 사업형 지주회사가 아닌 일반 지주회사들의 경우 배당과 브랜드사용료가 수익 대부분인 탓에 자금 마련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솔홀딩스는 올 1분기 기준 현금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코오롱은 40억원, 셀트리온홀딩스는 50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비교적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600억원)와 종근당홀딩스(300억원), CJ(275억원)도 향후 자금 소요를 고려하면 여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산규모가 큰 지주회사들의 경우 그나마 자본시장 활용이 가능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지주회사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145곳의 지주회사 중 121곳(83%)은 신용등급이 없거나 만료된 상태다. 신용등급을 보유한 24곳의 기업 중에서도 자산규모가 5000억원 미만인 곳은 7곳에 불과하다.
IB 업계 관계자는 "지주회사 요건이 강화되면 기업별로 막대한 자금 소요가 예상된다"며 "사업적으로 현금을 창출하지 못하는 지주회사들이 자금마련을 위해 선택할 방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본성 조달을 비롯한 자금계획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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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6월 1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