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입지 애매했던 내세우기식 정책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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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적자를 내고 있지만 성장성이 큰 기업을 증시에 유치하겠다며 연초 도입된 '테슬라 요건'이 벌써 표류 위기에 처했다. 정권이 바뀌며 정책 지속성이 낮아진데다, 주관사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도 과중해 '유인'이 없다는 지적이다.
테슬라 요건은 임종룡 금융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10월 도입됐다. 적자 기업이라도 시가총액이 500억원 이상이거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2배 이상이면 주관사의 추천에 따라 특례상장할 수 있는 제도다. 이에 발맞춰 한국거래소도 테슬라 요건을 적용할 수 있도록 상장규정을 정비했다.
지난해만 해도 금융위와 거래소가 테슬라 요건 도입에 상당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창조경제'에 발맞춰 자본시장을 통해 초기·혁신기업에 자금줄을 트고 싶었던 금융위와, 상장 기업 수를 늘리는 데 집중했던 거래소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테슬라 요건이 발표된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미미하다. 올 초까지만 해도 카페24가 미래에셋대우와, 티켓몬스터가 삼성증권과 주관계약을 체결하며 시선을 모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일단 정권이 바뀌면서부터 추진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신임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일단 주택시장 안정과 가계부채 관리, 금융소비자 및 서민보호에 집중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테슬라 요건은 통로를 넓혀준 것으로,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말했다.
거래소 역시 정찬우 현 이사장이 취임한 후 상장예비심사의 큰 흐름이 바뀌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장 기업 수 확장에 열을 올리던 거래소가 다시 '시장 안정'과 '리스크 관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주 단위로 상장신청 기업과 상장예심 통과기업 수를 보고받으며 상장 확대를 독려하던 최경수 이사장이 퇴임한 까닭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 공모엔 일반투자자도 참여하는데, 일반인에게 '모험자본 투자'를 하라는 건 이번 정부가 내세운 정책의 방향과 엇나가는 것"이라며 "최근 거래소의 움직임도 '문제의 소지'가 있을만한 정책엔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테슬라 요건이 애초부터 입지가 애매한 '내세우기식 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코스닥 시장엔 '대형기업 상장제도'가 있다. 자기자본이 1000억원 이상이거나, 시가총액이 2000억원 이상이면 자본잠식 상태나 적자 상태라도 상장이 가능하다.
테슬라는 상장 직전 기업가치를 6000억원 안팎으로 평가받았고, 2010년 상장 첫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2조원에 달했다. 정작 테슬라는 '테슬라 요건' 없이도 국내 증시에 상장할 수 있었던 셈이다.
정부도 거래소도 한발 물러난 상황이다보니 이제 주관사인 증권사가 부담해야 하는 책임만 남았다. 테슬라 요건으로 기업이 상장하면, 상장을 추천한 주관사는 이후 3개월간 상환청구권(풋백옵션) 부담을 져야 한다. 풋백옵션은 3개월 내 주가가 공모가의 90% 이하로 하락하면 그 가격에 일반투자자 지분을 주관사가 되사줘야 하는 제도다.
예컨데 테슬라 요건을 통해 시가총액 1500억원에 500억원을 공모해 상장한 기업이 있다면, 일반투자자 배정분인 100억원에 대해 주관사가 풋백옵션 부담을 진다. 90% 가격으로 매수해야 하므로 부담액은 90억원이다. 500억원 공모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수수료 수익은 5억~15억원 안팎으로, 90억원의 리스크 노출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형 테슬라 1호'로 주목받고 있는 카페24 역시 연말 상장공모 과정에서 테슬라 요건을 통해 상장할지는 미지수다. 카페24는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연 실적 기준 흑자 전환이 유력해 일반 상장도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주관사가 풋백옵션 부담을 선택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한 대형증권사 상장 담당 임원은 "국내 1위 증권사로서 대내외에 과시할 '성과'가 필요한 미래에셋대우나 기업공개 인력을 크게 늘리며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는 삼성증권 정도를 빼면 테슬라 요건을 노리는 증권사는 많지 않다"며 "시범적으로 1~2개 기업이 테슬라 요건을 통해 상장할 수도 있겠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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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8월 0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