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후순위…인재영입서도 밀려
상황 타계할 포지셔닝·전략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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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의 1순위 과제는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글로벌 시장 안착이다. 국내외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현대자동차는 신차출시와 판매대책 마련에 '제 코가 석 자'다. 그렇다 보니 기아자동차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지만, 제네시스와 현대차에 치어 그룹 내 투자 우선순위는 늘 후순위다. 기아차가 내세운 '양적 성장'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고, 이렇다 할 성장전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기아차 투자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기아차는 올 상반기 어닝쇼크를 기록하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7868억원으로, 2010년 상반기 7337억원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아차는 중국 시장에서 사드(THAAD) 배치 여파에 따른 판매감소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올해도 어려운 영업환경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신흥 시장 공략과 신차 효과를 극대화, 레저용차량(Recreational Vehicle) 비중을 늘려 수익성 방어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실적은 나날이 악화하는데, 뚜렷한 타개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수익성 방어 대책 또한 기아차가 이제껏 내세운 성장전략과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투자자들은 기아차가 처한 그룹 내 구조적인 한계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는 그룹의 사활을 걸고 '제네시스' 브랜드 안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아차보다 브랜드 이미지가 나은 현대차 는 신차 출시와 마케팅 측면에서 늘 기아차에 앞선다. 기아차가 야심 차게 신차를 출시해도, 머지않아 제네시스와 현대차의 신형 동급 차량에 시장을 뺏기고 있는 모양새다.
판매량이 단적인 예다. 기아차의 유일한 초대형 세단 K9의 올 상반기 판매량은 제네시스의 가장 상위 모델인 EQ900 판매량의 15% 수준에 그쳤다. 유사 등급인 제네시스 G80의 판매량엔 5%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한 대형세단 K7 풀 체인지 모델 또한 현대차의 신형 그랜저 출시로 빛을 보지 못했다. 올 7월까지 K7의 판매량은 3만여대로, 8만5000대가량 팔린 그랜저의 3분의 1 수준이다.
프리미엄 퍼포먼스 세단을 표방한 스팅어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9월 고성능 퍼포먼스 세단인 제네시스 G70 출시를 앞두고 있다. 스팅어 출시 네 달여만이다. G70의 배기량과 판매 가격대가 스팅어와 유사하고, 일부 성능은 스팅어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스팅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감은 반감되고 있다는 평가다.
기아차가 강점을 갖고 있다고 평가 받는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유사한 시기에 출시된 기아차의 스토닉과 현대차의 코나는 같은 시장을 두고 경쟁 중이다. 기아차의 스포티지와 현대차의 투싼, 쏘렌토와 싼타페 모두 경쟁 차종이다. 그나마 기아차의 모하비가 유일하게 배기량과 가격 측면에서 동급차종이 없지만, 2019년 출시가 예상되는 제네시스의 대형SUV(GV80)와 경쟁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는 GV70, GV60 출시도 예고하고 있어 SUV 라인업도 조만간 완성된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시스와 현대차, 기아차가 동급 차종으로 국내시장에서 경쟁을 한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며 "이는 기아차의 브랜드 이미지가 제네시스와 현대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한 측면도 있지만, 그룹차원에서 기아차의 포지셔닝 전략과 판매를 늘리려는 마케팅 전략 마련에 의지가 없는 것으로도 풀이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연구소에서 개발한 내연기관과 내장 기술이 현대차와 기아차에 동일하게 접목하다 보니, 기아차가 현대차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문은 '디자인'이 유일했다. 실제로 K시리즈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기아차의 재도약을 이끌기도 했지만, 이미 '옛날 차'가 된지 오래다. K시리즈의 최초 출시 이후 기아차의 '디자인 혁신' 속도는 느려졌다. 기아차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동안 그룹에선 제네시스를 필두로 한 글로벌 경쟁력 제고방안을 마련했다. 디자인 분야에서도 인재영입과 지원이 제네시스에 몰리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던 2009년까지만 해도 기아차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정 부회장의 적극적인 인재 영입과 지원 의지는 소비자들과 투자자들 기대감을 키우기 충분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이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이후부턴 그룹 내에서 기아차를 적극적으로 이끌 조직과 인물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아차를 이끌고 있는 수장들 모두 전형적인 현대차 출신 인사다. 이형근 대표이사 부회장은 1977년 현대차에 입사해 25년 이상 근무했고, 2003년부턴 현대차의 100% 자회사 케피코에 부사장을 맡았다. 박한우 대표이사 사장은 현대차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에서 한 때 성공을 보여준 것과 같이 현대차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만들어 내 인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며 "현대차그룹에서 3순위에 밀려있는 기아차 임원들이 그룹 전체회의에서 기아차의 생존과 성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고 했다.
한 때 기아차의 해외시장 진출에 기대를 거는 투자자들도 많았다. 기아차가 멕시코와 인도 진출을 선언하며 '양적 성장'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웠을 때만 해도 일부 투자자들은 현대차보다 기아차의 성장성에 더 주목했다.
해외 소비자들이 바라보는 현대차와 기아차는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선 형과 아우에 빗댈 정도로 현대차와 기아차를 '종속적인 관계'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해외에선 이 둘을 독립적인 브랜드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이 때문에 기아차가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멕시코산 제품에 대한 국경세 부과와 같은 예상치 못한 '대외 변수'들이 등장하며 기아차의 해외 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시들해진 게 사실이다. 이는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돼 2012년 8만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현재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 자동차 담당 한 연구원은 "불과 지난해만 해도 기아차의 신흥국 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감으로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며 "이 같은 성장전략이 유효할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네시스와 현대차 등에 치어 투자 순위에서 늘 밀려있는 기아차에 대해 기대감을 걸고 있는 투자자들은 현재 몇 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아차가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다양한 라인업을 확보해야 한다', 'SUV에 부문에 특화된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등 다양한 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기아차의 현재 상황을 '위기로 인식 하는지' 또는 '성장전략 마련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는 미지수란 의견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시스와 현대차의 성공을 위해 기아차가 늘 바닥을 깔아주는 모양새인데, 현대차그룹에서 이 상황을 전환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며 "현재 지배구조상에선 이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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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8월 13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