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마다 실패하는 SK텔레콤…인력의 질(質) 문제인가요?"
입력 2017.09.15 07:00|수정 2017.09.18 09:40
    [취재노트]
    • "SK텔레콤의 신사업 투자는 왜 항상 실패하나요? 인력의 질(Quality) 문제인가요?"

      최근 한 국내 증권사 통신담당 연구원은 해외 투자자설명회(NDR)에서 만난 투자자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미국내 최고 수준 재원들이 입사를 꿈꾸는 회사는 알려진 대로 구글·아마존·애플 등 실리콘밸리 내 IT기업이다. AT&T, 버라이즌 등 통신사에 입사하면 의아해 한다. 통신사의 성장엔 한계가 뚜렷한데다 단순한 ‘망 관리’ 업무에 그칠 것이란 편견 때문이다.

      국내에선 최고의 인력들이 모이는 곳은 단연 통신사, 그중에서도 SK텔레콤(이하 SKT)이다. 그렇다보니 회사의 미진한 성과 원인이 ‘인력의 질 문제’로 귀결되는 것에 당혹스러울 뿐이다.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대로 그간 비통신 부문에서 SKT의 성과는 미미하다. 통신 1위 사업자 SKT는 탄탄한 점유율과 수익성을 바탕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신사업에 뛰어들었다. 최태원 회장 등 몇몇을 제외한 SKT 경영진 대다수가 반대한 하이닉스 인수만이 유의미한 성과로 꼽힌다. 과거 2000년대 초반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해외 통신사 M&A는 대부분 파산 혹은 청산으로 끝났다. 이후 '정보통신기술(ICT)노믹스'를 내세워 헬스케어·음향기기·보안업체 등 연관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SKT의 틱톡 인수는 유명한 일화다. 2012년 카카오가 투자 유치를 위해 SKT를 찾아갔지만, SKT는 카카오보다 ‘기술력’이 뛰어나단 이유로 틱톡을 인수해 내부에서 키우기로 결정했다. 이후 카카오는 중국 텐센트를 2대 주주로 유치해 통신사들의 견제에도 사세를 확장했다. 그리고 SKT의 틱톡은 서비스를 종료했다.

      최근까진 자회사 SK플래닛을 통해 ‘생활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려 했지만 대규모 적자로 이어져 투자자들의 불만이 속출했다.

      잇따른 투자 실패에 SKT 내에서도 '절치부심'한 모습이다. 일찌감치 일본 소프트뱅크를 롤모델로 삼아 투자 조직을 꾸렸다. 최근에는 사내 부장급 이상 임직원이 대상이었던 '소프트뱅크 견학'을 과장급 인력까지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소프트뱅크를 방문해 본사 건물 및 내부 사무실을 보고올 때가 아니라, 본질적인 투자 철학을 공유해야 할 때라는 시각이다.

      M&A 전문가인 박정호 사장이 SKT의 새 수장으로 부임하는 등 그룹차원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박정호 사장은 부임 후 전임 장동현 사장이 추진해 온 신사업에 대해 전면적인 '살생부' 작성에 나섰다. 현재 자체 인공지능(AI) 서비스 '누구'와 ‘티맵’ 등 굵직한 사업 일부를 제외한 모든 비통신 사업은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선 박정호 사장을 두고 ‘박정희 스타일’라고 부른다”라며 "전임 사장이 대기업 내 스타트업 조직을 본따 전방위적으로 신사업을 펼쳤다면, 지금의 사장은 반도체 등 유형자산에 대한 M&A 등 눈에 보이는 성과에 중점을 두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사장과 함께 신사업을 총괄해온 CTO(최고기술경영자)가 박정호 사장과의 마찰로 회사를 떠나고, 연초 예정됐던 신사업 분야 경력 채용까지 중단시키는 등 현재까지도 구조조정 및 조직개편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의 반응은 일단 나쁘지 않다. 11번가 매각설, SK플래닛의 구조조정, 비주력 사업의 정리 소식이 들릴 때마다 SKT의 주가는 상승했다. 박정호 사장도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려 회사 주가를 끌어 올리는데 매진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경영성과평가(KPI)에 '주가 부양'을 포함시켰고, 스톡옵션까지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주가와 관련한 내부 보고를 받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사업 '교통정리'가 본질적인 해법이 될지는 단언할 수 없다. 회사를 지켜보거나 경험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결국 국내에서 규제로 보호되는 과점사업자로서의 본질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성과에 따라 내부 부서간에도 경쟁이 치열한 다른 산업군에 비해 SKT는 '신상필벌'이 불가능한 조직이라는 구조적 한계도 거론된다.

      국내 통신사 관계자는 "통신업은 기간 산업 특성상 마케팅·서비스·네트워크 관리·신사업 투자 등 어느 사업본부가 이익에 더 기여했는지 분리해 평가하기가 어려운 구조"라며 "그러다보니 임원진들도 순환해서 보직이 정해지고, 망 관리하던 인사가 어느날 신사업 투자를 전담하는 등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하겠다"는 회사 비전에 투자자들은 시큰둥한 모습이다. 신사업 같은 익숙하지 않은 '짐'은 다른 계열사에 넘기고, 회사는 통신사 본업에 집중해 배당을 늘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면 된다는 시각이다.  미래 청사진을 담보로 행했던 SKT의 실험은 실패했고, 이를 지켜보던 투자자들의 인내도 다 했다.

      증권사 통신 담당 연구원은 "수익성이 둔화하는 통신업의 한계도 이해하고 플랫폼 영역의 중요성도 공감하지만 통신업 투자자 입장에선 그간 ‘양복입은 국내 최고 수준의 고비용 인력’이 스타트업처럼 회사를 운영하는 데 정서적인 반감이 상상 이상이었다"며 "회사 입장에선 억울한 평가지만, 그만큼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시장에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