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3조~4조원 + 기회비용' 투입에도 기술접근 사실상 차단
SK실트론 등 소재사 가치 부양을 위한 '포석'도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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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9개월을 끌어온 도시바반도체 인수전이 막바지에 달했다. 베인캐피털 연합·웨스턴디지털(WD) 연합·대만 훙하이 연합 간의 '역전극'이 거듭된 끝에 SK하이닉스가 속한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이 다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인수가 성사되면 SK하이닉스가 기술과 특허, 양 날개를 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SK하이닉스가 투자 대비 직접적인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분석이다. 도시바 측이 경쟁사로의 기술 유출 등을 우려한 일본 여론을 고려해 지난 6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때보다 더욱 단단한 보호 장치를 갖췄기 때문이다. 대신 SK실트론과 같은, SK그룹이 전략적으로 내재화한 반도체 ‘중간 소재사’들의 수혜가 기대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 3조(兆)를 쏟는다는데…SK하이닉스 직접 시너지는 '물음표'
SK하이닉스는 21일 공시를 통해 "도시바가 SK하이닉스의 파트너인 베인캐피털이 포함된 컨소시엄과 매각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시바도 전일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으로의 매각 결정 및 인수 조건을 발표했다. 도시바는 구체적인 해외 전략적투자자(SI)들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 외 애플, 델, 시게이트, 킹스턴 등 미국 IT회사들이 다수 참여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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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구조도 일부 드러났다. 도시바는 반도체 자회사 지분 100%(3000주)를 베인캐피털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판게아(pangea)'에 약 20조원(2조엔)에 넘긴다(자본금 약 2조5000억원). 이후 도시바와 각 인수 후보들은 합의를 통해 해당 SPC에 일정 비율씩 출자에 나선다.
도시바는 여기에 약 3조5000억원(3505억엔)을 출자한다. 외신에 따르면 도시바는 이를 통해 지분 40.1%를 확보하고, 장비업체 호야(HOYA) 등 일본 기업들이 지분 10%를 확보해 경영권 지분(50%)을 유지할 계획이다. 유사시 산업혁신기구(INCJ)와 DBJ(일본산업은행)의 출자도 열어두었다.
베인캐피털과 SK하이닉스는 SPC에 약 6조원을 출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SK하이닉스가 약 3조원 내외를 투자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향후 지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CB) 성격의 투자가 아닌, 단순 융자를 제공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는 공식 발표를 통해 거래 이후에도 해외 기업의 지분 참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계약했다고 명시했다. 경쟁사로의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일본 내 여론을 의식해 한층 단단한 방어 조항을 만든 셈이다.
거래에 참여한 관계자는 "아직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구체적인 조항을 언급할 순 없지만, 지난 6월보다는 더 깊은 단계로 합의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룹 관계자는 "거래를 주도하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11일 일본으로 출국한 이후 분위기가 바뀌고 신속하게 결정됐다"며 "딜(Deal) 구조 측면에선 SK가 양보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해당 구조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조(兆)단위 투자를 단행한 것이지만, 그것에 비해 직접적인 실익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도시바 반도체 사업의 경영권이 중국 칭화유니 등 잠재적인 경쟁업체로 넘어갈 가능성을 막았다는 ‘간접적인 효과’ 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낸드플래시(낸드) 반도체를 최초 개발해 원천 기술을 보유한 도시바반도체를 품으면서 '낸드 원천기술도 확보하게 됐다', '특허까지 확보하게 돼 양 날개를 얻었다'라는 기대감이 부풀었지만, 경영 전면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이라며 "기회비용 측면에선 그 효과가 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 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한 '담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IPO 등 향후 투자 회수가 목적인 베인캐피털 등 FI가 주주로 참여하면서, 공격적인 확장 전략보단 수익성 극대화 위주의 경영 전략을 펼 것이란 전망이다. 향후 발생될 ‘치킨 게임’을 미연에 방지하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인수와 별개로 약 8조원을 기술 개발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현재 호황 구도를 유지하면서 주춤한 도시바의 상황을 활용해 자체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점쳐진다.
◇ SK실트론 등 그룹 반도체 소재사, 새 '공급망 확보'로 기대감↑
일각에서는 오히려 SK그룹의 '히든카드'를 전망하는 시각도 나온다. SK하이닉스가 직접 받는 수혜보다 SK그룹 차원에서 지난해 이후 전략적으로 내재화한 반도체 소재업체들에 대한 기대감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지분을 보유한 웨이퍼 제조업체 SK실트론 외에도, 지주사 SK㈜ 산하의 특수가스 업체 SK머티리얼즈, 반도체 소재업을 꾸리는 SKC 등이 거론된다.
한 그룹 관계자는 "과거 조대식 사장이 SK머티리얼즈와 SK실트론 인수를 이끌며 지주사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고, 이로 인해 신임을 받게 된 점은 그룹내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박정호 사장도 도시바 인수를 통해 유사한 방향을 의도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관심은 SK실트론으로 집중되고 있다. 인수 과정에서 최태원 회장이 직접 지분(29.4%)을 확보하게 되면서, 그룹내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구조가 기업 가치 부양의 한계점으로 지적돼왔다. 현행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규정에 따르면 특수관계인 지분이 20%를 초과하고, 그룹 계열사로부터의 매출 비중이 30%를 초과할 경우 매년 영업이익의 일정 비중을 최 회장 개인에게 과세한다.
현재 SK실트론의 매출 비중은 삼성전자(30%)와 SK하이닉스(20% 중반) 양 사가 절반을 넘는다. SK실트론 입장에선 도시바라는 새로운 고객망을 확보해 SK하이닉스 매출 비중을 희석시킬 수 있다. 다만 도시바가 기존까지 일본내 웨이퍼업체 신에츠공업·섬코 등과 거래를 해왔고 도시바의 기존 경영권이 유지되는 만큼 갑작스런 공급망 변화는 어려울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일시적으로 추진이 중단된 SK실트론의 상장(IPO)이 재개되면 가치 평가과정에서 보다 유리한 요소를 마련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SK실트론이 신규설비(4공장) 가동을 앞둔 상황에서 도시바라는 잠재 고객이 늘어난 점은 호재"라며 "LG로부터 인수 이후 호황을 맞아 실적이 반등한 데 이어 미래 성장성까지 강조하면서 상장 추진 시 높은 가치평가를 유도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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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9월 2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