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ZKW)·SK(도시바)·CJ(제마뎁)…매각측 고자세에 '쩔쩔'
"'꼭 필요한 매물'이라는 패 보여주는 협상" 근본적 불리함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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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SK 등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이 뭉칫돈을 들고 해외 M&A(Out-bound)에 나서고 있지만 매각 측의 높은 콧대를 실감하고 있다. 거래 종결 막바지까지 구속력 있는 계약을 피하는 사례는 부지기수고, 거래 파기 시 위약금 조항 등 기본적 방어장치들도 거부하는 태도다. 마지막 1원까지 금액을 끌어내려는 태도에 장기간 쩔쩔매는 모습이다.
LG그룹은 미래 신사업으로 꼽은 자동차 전장분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 말 이후 오스트리아 차량조명업체 ZKW 인수에 뛰어들었다. M&A에 소극적인 기업 문화라는 세간의 평가를 깨고 글로벌 투자은행(IB) 한 곳을 선임해 ‘1조원’ 규모 글로벌 거래에 참전했다.
초반 기세와 달리 LG그룹은 인수에 1년 넘게 진땀을 빼고 있다. 매각 측의 협상 태도가 원인으로 꼽힌다. 비상장사인데다가 오랜 기간 '모머트'(Mommert family)라는 특정 가문이 소유해온 탓에 통상적인 M&A 절차는 일찌감치 거부됐다. LG 측은 '구속력 있는(binding)' 계약을 요구하고 있지만, 매각 측은 위약금 등 어떠한 구속력 있는 조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 자동차 부품 관련 중견업체 ‘에스엘(SL)’도 지난해 입찰에 함께 참여했지만, 매각 측의 높은 콧대에 일찌감치 협상장을 떠났다는 후문이다.
거래에 밀접한 관계자는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 정도면 '스크루지 영감이랑 거래하는 기분'이라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며 "오전에 구두로 합의한 내용인데 오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말을 바꿔서 진성매각 의지가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국내기업 중 베트남에서 오랜 업력을 쌓았다고 평가받는 태광실업도 최근 쓴맛을 경험했다. 지난 6월 제마뎁의 최대주주인 베트남 인베스트먼트 그룹(VIG)이 보유한 전환사채(CB)를 포함, 주식 51%를 인수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지만 협상이 막판 부결됐다. 매각 측이 MOU 체결 이후에도 일본 측 인수 후보를 다시 불러와 가격 경쟁하는 등 기존 합의안을 뒤집었지만, 태광 측이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는 평가다. 같은 매물을 약 4년간 들여다보던 CJ대한통운에 기회가 넘어가면서 이달 내 SPA 체결을 목표로 협상이 진전중이다.
M&A업계 관계자는 "MOU 체결시 상대방의 합의사항 위반에 대한 '위약금 조항'도 끼워 넣지 못하는 등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며 "아무리 태광실업이 베트남 현지 사정에 밝다고 하더라도 자문사를 끼지 않고 거래를 진행한 건 실책이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올 한해 아웃바운드 M&A 시장에서 화제가 된 거래는 장장 9개월을 끌어온 ‘20조원’ 규모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전. 막바지 2개월 동안 베인캐피탈-SK 컨소시엄·KKR-웨스턴디지털 컨소시엄 사이에서 우선협상대상자만 3번이 바뀌는 혼전이 거듭됐다.
결과를 두고 "일본측이 협상을 잘 끝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SK그룹이 SK하이닉스를 필두로 연초 경영권 인수를 목표로 총력을 다했지만, 결국 손에 얻은 성과는 '3조원 대출+향후 전환이 불확실한 소수지분 확보'에 그쳤다. 여기에 더해 10년간 기술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직접적인 수혜도 찾기 어렵다. "자칫하면 중국에 매각한다"는 도시바의 벼랑 끝 전술이 빛을 발한 셈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협상을 주도하다보니 SK입장에선 결과적으로 그룹차원에서 나서서 경쟁사인 도시바를 파산 직전에서 구해주고, 애플·델 등 굵직한 소비자들까지 붙여준 셈”이라며 “이사회 힘이 강한 국가였으면 진작 부결됐을 거래”라고 설명했다.
향후 국내 기업들의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한 M&A 거래 비중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기업들은 국내 산업 성장성 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해외를 바라보고, 덩치를 키운 국내 및 리즈널 규모 사모펀드(PEF)들도 해외 성장 산업 진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오랜 기간 해외 M&A 거래를 담당한 관계자들은 이 같은 매각 측의 '몽니'가 아웃바운드 거래에서 일상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수측에 선 국내 기업들이 ‘꼭 필요한 매물’이라는 패를 먼저 보이는 만큼, 협상력 자체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글로벌 ‘큰 손’들과의 경쟁으로 내재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한 M&A 담당 변호사는 “합리적이고 준법정신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독일에서도 업체들이 막상 협상장 앞에 서면 말을 바꾸고 특수한 현지 상황을 숨기는 등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이기 일쑤”라며 “M&A에선 결국 매너와 평판보다는 활용할 수 있는 테두리 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대한 유리한 방향을 이끌어 내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아시아권 기업에 대한 피인수측의 선입견도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금전적·비금전적인 불리함을 안고 매각측을 설득해 나가야 하는 쉽지않은 난관에 직면한 셈이다.
글로벌 IB업계 관계자는 "이사회 힘이 강한 일본은 이런저런 조항을 꼼꼼히 요구하고 의사결정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오히려 오너 결단에 딜을 빠르게 끝낼 수 있는 국내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긴 했다"며 "다만 아직도 피인수 기업들이 알려지지 않은 동양 회사에 매각되는 점에 대해 반발하는 점은 과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다른 M&A 관계자는 "오히려 해외 M&A가 '글로벌스탠다드'고, 국내에서 지나치게 쉽게 성사돼왔다는 생각도 든다"며 "국내에서 대기업들은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을 몰아 넣어 인수 가격을 깎기도 하고, 민감한 조항도 실무진끼리 술을 마시며 풀어버리는 사례도 심심치 않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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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0월 0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