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 경영복귀 염두" vs. "총수 부재 속 정부 압박" 의견도
다가온 연말 인사에서 이재용 큰 그림 구현할 '오른팔' 관심
-
하드웨어에 주력하던 삼성전자는 '데이터회사'가 될 것임을 천명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전세계 정상 자리에 올려놓은 수장(首長)은 사상 최대실적을 발표한 날 "성장 동력을 찾는 일에 엄두를 못 낸다"는 말을 남기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
- 이미지 크게보기
- 손영권 사장(CSO)(좌)·이재용 부회장(중)·권오현 부회장(우)
멈췄던 삼성전자의 개혁 시계가 빨라졌다. 수장이 떠난 자리는 누군가가 채우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복귀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 속에서 이 부회장이 제시하는 '청사진'과 '누가 그 그림을 구현하게 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데이터 회사'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을 발표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삼성CEO서밋'에서 손영권 삼성전자 사장(최고전략책임자; CSO)는 향후 스마트머신·사물인터넷(IoT)·디지털헬스·데이터인프라 등 4개 분야를 집중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세계의 데이터의 70% 이상이 삼성제품을 통해 생성되고 저장되는 만큼 막강한 하드웨어를 무기로 '데이터 전쟁'에 뛰어들겠다는 의미다.
손 사장의 발표 이튿날인 13일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을 발표했다. 올 3분기(38조5000억원) 기준으로 이미 연간 영업이익 기준 최대치인 36조8000억원을 넘어섰다. 현재 추세라면 영업이익 50조원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부문의 기여가 가장 컸다. 공교롭게도 실적발표 직후 반도체 부문을 총괄하는 권오현 부회장은 내년 3월 연임을 포기하고 사퇴할 뜻을 밝혔다. 권 부회장은 "회사가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공판 시작일을 전후로 삼성전자가 새 비전을 발표하고 권 부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평가, '재계 1위 기업 총수부재 장기화에 대해 정부에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하려는 목적'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일선에 나선 이후 삼성은 방위산업과 화학분야에서 철수하고 미국 전장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하며 '전자' 중심의 경영전략을 추진해 왔다. 다행스럽게도 반도체 부문이 '초호황' 사이클을 맞으면서 이 부회장의 전략에 맞춰 삼성전자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설 수 있는 여력을 뒷받침 했다.
반도체 분야의 호황만을 믿고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데이터회사'로서의 비전발표는 단순한 먹거리를 찾겠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관련부품의 자체 수요를 늘리겠다는 의미와 함께 제조업 기반에서 벗어나 이 부회장의 경영철학을 꾸준히 유지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에 30년간 몸담았고 총수 부재 상황을 맡고 있던 권 부회장이 사퇴를 발표함에 따라 이 부회장은 친정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등기이사직에 올랐지만 아버지의 '오른팔'을 대신할 '파트너'가 사실상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권 부회장의 사퇴를 통해 이 부회장의 경영방침을 구현할 '인사의 선택지'가 늘었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비전발표와 권 부회장의 사퇴발표는 현재 시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가 길어지면 안 된다는 삼성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며 "총수를 대신해 정부의 카운터파트너 역할을 했던 권 부회장의 사퇴를 통해 정부에 압박을 더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올 연말 임원인사를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은 매년 12월에 임원인사를 실시하고 이듬해 2월 말 하부조직의 임직원 인사를 단행해 왔다. 지난해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수사와 맞물려 임원 인사는 반년가량 늦춰진 올해 5월 소폭으로 단행했다. 이번 권 부회장의 사퇴발표에 따라 연말 임원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높아졌다.
주요 경영진들의 입지도 상당히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업계에선 윤부근(CE부문 총괄)·신종균(IM부문 총괄) 대표이사, 김기남 반도체 총괄 사장, 이상훈 경영지원실 사장, 이인종 부사장(무선개발 1실장) 등 주요 임원진의 거취에 관해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미국을 거점으로 소프트웨어 분야 신사업을 발굴해 온 손영권 사장과 데이비드 은(David Eun) 삼성넥스트 사장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 부회장의 대규모 투자와 경영활동에 주요한 역할을 해 온만큼 이 부회장이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新)구(舊) 또는 미국과 한국 등 어떠한 기준으로든 이 부회장의 친정체제 구축이 가시화하면서 주요 임원들 간의 헤게모니 변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최고경영자가 바뀜에 따라 하부조직의 개편을 위한 대대적인 임원인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부회장이 경영 복귀여부와 상관없이 이 부회장의 최 측근을 중심으로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0월 13일 17:21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