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낙하산 인사, 이제 힘들어져
내부엔 사람없고 외부수혈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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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임하며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에도 인사태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다만 제조계열사와는 달리 얼마나 효율적인 경영진 구축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그룹 컨트롤 타워가 상당기간 역할을 하지 못했고, 금융사에 특화된 인재 육성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부회장은 회사가 분기 사상최대 실적을 알린 지난 13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권 부회장이 그룹을 위한 ‘용단’을 내렸다는 평가와 함께 ‘박수칠 때 떠나라’ 이상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분석이 따랐다.
한 재계 관계자는 "권 부회장이 사상 최대 실적에도 물러난 것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의 앞길을 터주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수년째 제대로 된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급작스럽게 쓰러진 2014년을 기점으로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세대교체 가능성만 검토됐다. 연말 인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최순실 사태’에 따른 이재용 부회장 부재 속에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도 해체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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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권오현 부회장 사퇴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는 비단 삼성전자에 그치지 않고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금융계열사 인사는 당분간 큰 폭의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황이 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삼성그룹 직원은 “권오현 부회장 사퇴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올해 연말인사는 소폭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라며 “하지만 권오현 부회장 사퇴 이후 그룹 출신 임원들의 대규모 세대교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금융사의 ‘세대교체’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제조사와는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세계 제 1의 제조사란 타이틀에 걸맞게 인재풀(pool)도 넓다. 내부 경쟁도 치열하고, 포스트 권오현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이 즐비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금융계열사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현직 삼성 금융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그룹 비서실 등을 거친 비금융 출신 인사들이다. 그동안 그룹에서 CEO를 내려 보내는 방식으로 인사가 진행되다 보니, 금융전문 CEO 풀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다. 삼성전자 출신과 달리 글로벌에서 경쟁한 경험도 사실상 전무하다. 삼성전자의 '1등 DNA'를 금융사에 이식한다는 오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인사는 더 이상은 힘들어지게 됐다. 지난해 말 이후 각 계열사가 이사회 체제로 전환을 추진하면서, 이제는 비금융 출신 그룹 인사가 금융계열사 경영진으로 합류하는 구조가 어려워졌다. 내부 경쟁 또는 외부의 금융전문가를 데려와야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준비는 미비한 상태다.
한 전직 삼성 금융계열사 임원은 "공채 중심의 순혈주의가 강한 삼성에서 외부인사를 주요 보직에 앉힐지 의문"이라며 "그렇다면 내부에서 CEO등을 배출해야 하지만, 실무형 인재가 많다 보니 CEO군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인적쇄신이 CEO의 수평이동이란 말들도 나온다. 하지만 금융계열사 내 내부 이동을 '세대교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한 삼성 금융계열사 내부 관계자는 "금융사에서 이재용 시대를 열 만한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며 "권 부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만큼 어떠한 형태로든 인적쇄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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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0월 2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