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리콘밸리 등 외부 투자조직에 전담 맡겨
손영권·데이비드 은 양대 투자조직 사장 역할 확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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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노트 개발 초기인 지난 2011년경,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일본 기술기업 한 곳의 인수를 두고 장고를 거듭했다. 도쿄대 물리학과 출신 연구소 인력들이 세운 회사로, 와인 잔에 담긴 와인의 물결 등 사물의 움직임을 세밀히 계산해 파동을 재현하는 기술을 보유한 연구소였다. 갤럭시노트의 펜을 활용해 그린 그림에 애니메이션 효과를 입히는 기술을 접목하려던 삼성전자는 해당 기술을 확보할 목적으로 인수에 공을 들였다.
연구기업 특성상 별다른 유형 자산도 갖추지 않았고, 도쿄대 출신 연구원 5명이 회사 자산의 전부였다. 일본 내에서 괴짜 물리학 천재로 알려진 회사 대표는 완고하게 매각가로 500억원 이상을 고집했다. 결국 무선사업부에선 “너무 비싸다”는 의견과 함께 2년내에 절반 수준인 200억원이면 내재화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수는 무산됐고, 삼성은 자체 기술 개발에도 실패했다.
당시 한 삼성그룹 임원 출신 인사는 이렇게 귀띔했다.
“삼성전자라는 '공룡' 내에선 보고가 힘든 상황이었다. 수십조원을 들인 평택 반도체 설비가 익숙한 임원들이었다. 변변한 유형자산 하나 없는 회사에 500억원을 쏟자는 제안을 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기존 제조업 시각으로는 가치평가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윗선에 보고 자체를 주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같은 사례가 누적되면서 IT 격변기에 빠른 ‘미래먹거리 확보’가 제한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삼성그룹의 변화를 이끌었다. 몸집이 비대해지고 의사결정이 복잡해진 국내 사업부가 기술기업·스타트업 기업 M&A에서 구글·애플·아마존 등 글로벌 경쟁사에 뒤처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물색하고, 기존 가전·스마트폰 등 무거운 제조설비는 점차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로 이전하는, ‘머리는 미국·몸은 베트남’ 기조의 배경이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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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2014년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후 그 변화는 더욱 구체화했다. 미국 내 별도 투자 조직 구성이 본격화하고 글로벌 경쟁사 출신의 인력 수혈도 이어졌다. 현재 삼성전자의 투자 조직을 이끄는 인텔 출신의 손영권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 사장과 구글에서 경력을 쌓은 데이비드 은 삼성넥스트 사장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최근 ‘하드웨어 삼성’을 상징해 온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소프트웨어·데이터 기반의 삼성’으로의 변화를 천명한 상황에서 이들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삼성그룹 M&A를 전담한 관계자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 인수가격도 약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데 보유한 유형 자산이라고는 몇 억원 수준에 직원 80명 남짓이었다”라며 “기존처럼 한국 무선사업부에서 결정했으면 가치 평가에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IT 기술에 해박한 데이비드 은 사장 등 삼성 넥스트 인력들에 전권을 주고 그들이 가치평가를 전담하다보니 인수가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선 이인종 부사장의 역할 부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부사장은 14년간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컴퓨터과학 교수로 근무 후 2011년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교수출신이라는 특성상 그룹 임원진 중에선 흔치 않게 경쟁사 애플의 ‘맥북’을 애용하는 인사로 회자되기도 했다. 삼성페이, 덱스, 빅스비, 녹스 등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사업 대부분을 주도했다. 다만 최근 빅스비 개발 부진에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향후 거취에 대해 그룹 내외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그룹에 밀접한 다른 관계자는 "세 인사 모두 과거 미전설(미래전략실)이 건재했을 당시에도 미전실과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고 이재용 부회장과 독대가 가능한 몇 안되는 S급 인력으로 분류됐다"며 "신뢰가 여전히 돈독한데다 한국 내에서 미래먹거리 발굴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체감했기에 이들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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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0월 3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