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체제에서 권오현 '회장'이 갖는 의미
입력 2017.11.06 07:00|수정 2017.11.08 10:03
    취재노트
    • 삼성그룹이 '회장'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삼성전자는 27년, 그룹 차원에선 18년만에 일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옥중경영 중 추진된 회장 승진 인사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삼성'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오너의 직함을 뛰어넘는 전문경영인 출신의 회장 선임을 통해 "오너만을 위한 또는 오너 중심의 기업이 아니다"는 의미를 강하게 어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에 이어 이건희 회장이 집권하던 1990년, 강진구 삼성반도체통신 부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선 처음으로 삼성전자 회장직에 올랐다. 올해 8월 강진구 회장이 작고한 이후 회장 직함을 가진 전문경영인 출신 인사는 없었다. 그룹에선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1993년), 임관 종합기술원 회장(1999년),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2001년)이 있다. 역시 이들의 승진 이후엔 회장 인사는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부재 속에서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왔다. 대대적으로 비핵심 계열사를 매각했고, 오롯이 이 부회장의 치적이 될 수 있는 신사업 M&A를 추진했다. 지난해엔 등기이사에 올랐다. 이 때문에 대대적인 인적 쇄신, 즉 아버지 세대와 결별은 어느 정도 예상돼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오현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의외의 결과였다. 삼성전자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최고인사에 대한 '예우'에 이견을 다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옥중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것도 27년만에 회장 인사를 단행한 목적에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 내 최고(最高) 직함을 내려놓았지만, 반대로 오너에게 집중된 무게감을 떨치게 됐다. 특히 일련의 활동들이 경영승계를 위한 목적이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본인을 뛰어넘는 전문경영인 출신 회장의 탄생은 경영활동이 단순히 승계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직함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윤부근·신종균 사장의 부회장 승진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회장단 인사를 계기로 삼성을 바라보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시각이 달라질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 투자자들은 '글로벌 기업 출신의 사외이사 선임'을 비롯해 글로벌 기업 수준에 걸맞게 삼성전자가 변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주주친화정책을 내놓으면서 이 같은 요구들을 절충하고 있지만 기업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쇄신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의 재벌(chaebol)기업에서 벗어나 글로벌스탠더드에 걸맞는 기업 이미지로 탈바꿈한다면 재무제표에서 숫자로 나타나는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삼성전자의 사장단 인사는 철저한 '성과주의 인사'를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각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꾸준한 성과를 내온 인사들을 기용했다고 자평했다. 새로 선임된 사장들 모두 50대, 평균연령 55.9세다.

      사장단의 세대교체에 성공한 이재용 부회장의 친정체제 구축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남은 부사장급 이하 주요 임원진 인사에서는 그 동안 신사업을 이끌었던 핵심 인사들이 중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 온 옛 미래전략실 인사들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