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증권사 '법적 근거 없이 문 걸어 잠궜다'
금감원 '2년 전부터 안내...순차적으로 정상화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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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기업들이 뿔났다. 금융감독원이 11월부터 '12월 결산법인'의 지정감사인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서다. 지난해까진 11월에도 신청을 받았다.
당장 이들 기업은 상장 일정이 미뤄지고, 감사에 따른 비용이 늘어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들을 대리하는 증권사들도 답답함을 토로한다. 민원이 빗발치는 가운데, 금감원은 '외부감사인 지정제도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중소기업 A사는 내년에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도록 지난달 의사 결정을 내렸다. 선임한 주관사와 함께 자료를 준비하고 이달 초 금감원 회계제도실에 감사인을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그러나 올해 지정감사인 신청은 끝났으니 내년에 다시 오라는 답변만 받았다.
A사는 내년 1분기 혹은 상반기 실적을 지정감사인을 통해 감사받은 후에나 코스닥 상장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적어도 3개월, 많게는 6개월 이상 일정이 미뤄지게 된 셈이다.
IPO 시장의 생리를 고려하면 A사는 사실상 상반기 결산 후인 8월부터 기관투자가들이 북(book)을 닫기 전엔 11월까지만 상장 공모를 진행할 수 있다. 여기에 비용적 손실도 있다. 분기나 반기 지정감사인을 신청하면 감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연말에 한번 진행하는 연간 감사보다 비싸진다.
상장 예정 기업과 증권사들은 금감원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상장 활성화를 제약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전까진 이런 제약이 없었는데 금감원이 갑작스럽게 규제를 만든데다, 규제를 지키지 않아 생기는 불이익은 모두 기업이 떠안으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실무자는 "자본시장 발전과 자본 공급을 위해 상장을 활성화해도 모자란 판국에 1년에 가장 중요한 2달 동안 신청을 안 받겠다며 빗장을 잠근 것"이라며 "금감원이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규제에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은 물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관련 규정 등에는 '결산월의 2개월 전까지 지정감사를 신청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
해당 규제의 근거는 금감원이 배포한 '외부감사제도 설명자료'뿐이다. 금감원은 해당 자료의 '자주 묻는 문답'(FAQ) 부문에 '상장 예정 법인은 결산일 2개월 전까지 감사인 지정을 신청하여야 합니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 자료는 바뀌는 규정 등을 반영해 매년 3월 진행하는 외부감사제도 전국순회 설명회에서 공개된다.
금감원도 해당 규제에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외부감사인 지정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바뀌고 있는 회계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당 내용은 2년 전부터 자료를 통해 안내하고 있는 내용"이라며 "없는 규제를 갑자기 만들었다기보단 순차적으로 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규제가 처음 안내된 것은 지난 2015년 설명자료에서였다. 당시 금감원은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2개월 전인 10월말까지 신청해야 한다'고 안내하며 '재지정신청포기 확인서를 제출하는 경우 11월말까지, 기업인수목적회사의 경우 12월말까지 신청이 가능하다'고 조건을 달았다.
지난해 자료에서는 기업인수목적회사 부분이 사라지고 '재지정신청포기 확인서를 제출하는 경우 11월말까지 가능하다'는 조건만 들어갔다. 올해 3월 배포된 자료에서는 이 내용도 사라지고 '결산월 2개월 전까지 신청해야한다'는 내용만 남았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공식 자료를 통해 2년 이상 간격을 두고 순차 적용하고 있다는 반론이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시장에 혼란이 일어났다. 11월들어 담당 부서인 금감원 회계제도실에는 민원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연말 감사인 지정을 받지 못한 상장 예정 기업들이 내년 초 일시에 몰리고, 이들의 상장 공모가 3분기 특정 시점에 과도하게 몰릴 가능성도 커졌다.
한 자산운용사 공모주 펀드매니저는 "IPO 시장에 오랜 기간 참여해왔지만 11~12월엔 감사인 지정 접수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며 "제도를 홍보하고 시장의 공감을 얻어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정부 당국의 노력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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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1월 17일 15:5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