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도 좋았지만 은행들은 매각 작업에 미온적
“위기 말하면서도 좋은 실적…추가 이익 부담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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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새 국제회계기준 IFRS9(금융상품) 도입에 앞서 유가증권을 매각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연말까지 활발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순익 증가 효과를 낼 카드지만 올해 실적이 좋았던 은행들은 매각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은행이 '이자 놀이'로 나홀로 호황을 누린다는 부정적 여론의 목소리가 큰 상황이라 일회성 이익을 굳이 늘리려 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내년 IFRS9이 도입되면 손상 인식 기준은 ‘발생손실’에서 ‘기대손실’로 바뀐다. 주식 처분 손익도 현재는 당기손익으로 인식하게 돼 있는 반면, 내년부터는 기타포괄손익으로 분류한 지분은 매각하더라도 당기손익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바젤III에 따라 내년엔 은행이 보유한 주식의 위험 가중치가 높아진다.
올해는 주식 시장도 좋았다. 자연히 은행들이 올해 보유 유가증권 매각에 힘을 쏟을 것으로 점치는 의견이 많았다. 실적 추이를 살펴 이익 규모가 부족하다 싶을 때 꺼내 들 수 있는 ‘히든카드’로 평가됐다. 2월 IBK기업은행은 이마트 지분 전량(93만9480주)을 매각해 1935억원을 회수하기도 했다. 신한은행도 포스코 지분 전량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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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외 은행들의 움직임은 잠잠한 모습이다. 간간히 시장에서 지분을 덜어낸 정도고 굵직한 매각은 이뤄지지 않았다. 연말까지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고 대부분 기관투자가들이 북클로징(장부 마감)을 앞두고 있어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안에 거래가 활발히 나타날 지 의문이다.
1조원대 자금 회수가 기대됐던 IBK기업은행의 KT&G 지분 매각은 없던 일이 됐다. 2015년말 올해까지 매각하기로 결정했었으나, 그보다는 주식 보유를 통한 배당수입을 얻겠다며 매각 계획을 철회했다. 하나금융그룹은 KEB하나은행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각하겠다고 밝혔으나, 주가 상승을 기대하며 매각을 반대하는 내부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타이어나 동부제철 전기로 등 구조조정 성격 거래는 원매자와 갈등을 빚었고, 앞날도 불투명하다. 평가 가치는 점차 떨어지고 있다. 이달 은행들이 추진한 대한전선 블록세일은 17%의 할인율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은행들이 예상과 달리 보유 지분 매각에 소극적이었던 배경을 준수한 실적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내년 IFRS9 도입이나 좋았던 주식 시장 등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올해 유가증권을 팔 이유는 충분했지만 매각을 제안해도 선뜻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은행들이 항상 어렵다면서도 좋은 실적을 내는 데 대해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이라 구태여 일회성 이익까지 더 거두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일반·특수 포함)들은 3분기 3조1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전년 동기에 비해 6000억원 상승했고, 대규모 대손비용이 발생했던 지난해 연간 순이익(2조5000억원)보다도 많다.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11조2000억원에 달한다. 시장 금리가 상승하고 순이자마진(NIM)도 확대되며 3분기 이자이익은 9조6000억원(전년 8조6000억원)을 올렸다.
은행들은 항상 위기론을 강조하고 있지만 막대한 이익 규모 때문에 여론의 공감까지는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가계 대출 옥죄기, 중기 대출 확대 정책이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많이 벌었다면 은행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는 어렵다.
유가증권 매각으로 올해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가, 내년에 실적이 떨어진다면 그 역시 부담이 될 수 있다. 허인 행장이 막 취임한 KB국민은행이나 행장 선임 절차에 들어간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은 올해 성적에 목을 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신한은행은 앞으로 내놓을 것이 썩 많지는 않다. 함영주 행장이 올해 연임에 성공한 KEB하나은행은 SK하이닉스 지분 매각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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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1월 2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