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두고 반년만에 펀드 출범…실효성 논란
'시장' 권한 없는 시장 중심 구조조정…유암코 관계정립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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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새로운 기업구조조정 추진방향' 핵심은 '시장'이 중심이 되는 산업 구조조정이다. 정부와 민간이 공조해 1조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하고 이를 통해 상시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취지다"
정부의 대대적인 발표가 무색하게 '시장'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민간 기업들은 '주체'가 아닌 상시 '구조조정 대상'으로 낙인 찍혔다. 사모펀드(PEF)와 민간출자자(LP) 등 자본시장 주요 참여자들은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 정부와 정부 뜻을 대변하는 산업은행이 주도한 구조조정은 몇 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그 실패가 남긴 '트라우마를 시장에 책임을 떠넘기는 '면피'를 위한 구조조정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1조원 규모 구조조정펀드 결성…"책임 없는 '돈'만 늘어나는 꼴"
정부는 상시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해 1조원 규모의 민관합동 펀드를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정책금융기관이 약 5000억원의 자금을 대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민간 LP들이 나머지 자금을 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PEF를 중심으로 한 운용사(GP)를 선정하고 펀드를 위탁·운용하게끔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결성 펀드의 총 15%정도를 후순위로 출자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말해 조성된 펀드가 1조원가량을 기업 구조조정에 투자해 1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민간 LP가 출자한 자금에는 손실이 가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다. 민간 LP의 출자를 유도하겠다는 뜻이지만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특성상 많은 기업이 초기 손실이 불가피해 이에 대한 대책으론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PEF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PEF가 투자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정부가 15%의 손실을 보전해준다고 해도 어떤 LP가 선뜻 출자에 나서겠냐"며 "정부가 유인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이해가 가지만 실제로 이에 대해 투자매력을 느낄 LP들이 있을지는 미지수다"고 했다.
정부 자금을 지원받기 위한 GP들의 경쟁은 생각보다 치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 같은 경쟁이 실제 투자를 위한 목적이라기 보단 넉넉한 관리보수(management fee)를 노린, 정부의 '코드 맞추기 식' 콘테스트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1조원 규모 펀드의 총 관리보수 규모는 100억~15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직접 투자성과가 없더라도 펀드 운용만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GP 입장에선 기업구조조정을 통해 진짜 수익을 내겠다는 목적보단 어떻게든 정부(또는 출자기관)에 코드를 맞춰 일단 돈을 받고 보자는 식의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추후 투자에 실패해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정부는 민간을, 민간은 정부를 탓할 수 있는 명분만 만들어 주는 셈"이라고 했다.
◇ 1000억짜리도 최소 6개월 걸리는 데…속전속결 펀드결성 추진
정부가 펀드결성을 완료하겠다는 시한은 내년 상반기다. 아직 어떠한 산업을 위험군으로 분류할지 또는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을 정리해 나갈 것인지 개괄적인 가이드라인은 제시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출자하는 펀드의 민간 LP 매칭 기간이 6개월인 점을 고려하면 진정성과 실효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성장금융이 출자하는 펀드의 위탁운용사로 선정되면 6개월간의 펀드결성 시한이 부여된다. 기한이 모자랄 경우 3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부실기업 투자를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 펀드를 결성하는데 있어 아직 민간부문의 합의점도 도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6개월이란 시한을 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펀드결성 추진을 밝힌 이후에야 주요 출자자들과 PEF를 비롯한 투자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18일 금융위원회 주도로 '출범식' 형태의 킥오프(Kick-off) 미팅을 가질 예정으로 전해진다.
국내 주요 기업구조조정 관련 거래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1000억원짜리 펀드결성에도 GP에 6개월까지 시간을 주는데 1조원 규모의 펀드 결성을 발표하면서 아직 GP 선정 공고도 없고 반년 만에 이를 달성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단 내놓고 보자는 식의 전형적인 공무원식 행정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 '권한'없는 '시장주도' 구조조정…유암코와 경쟁도 '불가피'
정부는 부실기업이 탄생하기 전 이를 걸러낼 산업 진단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주요산업 관련 유관부처(기획재정부·산업부처·금융위원회)와 연구기관(산업연구원·KDI), 관련기관(금융감독원·산업은행) 등이 협의를 통해 산업진단이 필요한 주요업종을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구조조정의 보완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사회(지방자치단체 및 지역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구조조정의 큰 틀은 정부가 마련한다. 정부가 절반 이상을 출자하는 펀드는 민간 GP가 운용을 맡고 이들은 정부가 마련해 놓은 큰 틀 안에서 구조조정 기업을 매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선제적 또는 자발적으로 구조조정 기업에 나설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지적된다.
PEF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밑그림을 전부 그려놓고 정부에서 받은 돈으로 구조조정 기업에 투자하라는데 여기에 '시장'이 중심이 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느냐"며 "위탁운용사들은 정부의 거수기 역할로 전락할게 뻔한데 지역사회의 반발과 평판관리 위험성을 무릅쓰고 투자에 나서야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끊임없이 제기돼온 연합자산관리(유암코)의 관계정립도 다시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워크아웃 또는 회생절차과정을 밟고 있는 기업들의 인수과정에서 유암코와 경쟁을 벌여야 했던 민간 GP 들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겠냐는 의구심도 나타내고 있다. 정부가 일컫는 '시장'이 주도하는 구조조정 방안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할 경우 결국 '민간'도 '관(官)'도 아닌 유암코에 힘이 실리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국내 PEF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구조조정 방안이 자리를 잡으려면 매각설이 계속됐던 '유암코'의 처리방안부터 정부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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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2월 1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