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자산운용, '유행'처럼 번진 유통·물류 투자도 주춤
예고된 경쟁 앞 국내 유통공룡 전략 '모호'
투자는 언제나 '관심'…모호한 방향성에 잦아든 투자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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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유통업체들이 신유통(New Retail)의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 온라인-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은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때 뜨거운 투자처였던 국내 유통시장에 굵직한 인수·합병(M&A) 거래가 사라진 지는 오래다. 여러 이유로 전략적 투자자(SI)들의 보폭이 줄어들면서 유행처럼 번졌던 유통기업에 대한 투자 열기 또한 사그라지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 만해도 국내 유통 M&A시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뉴코아와 킴스클럽마트(해태유통)·한국까르푸(홈에버)는 이랜드를 새 주인으로 맞았고, 신세계는 월마트코리아를 인수하며 업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공격적으로 몸집을 키워가던 롯데그룹도 GS스퀘어와 GS마트점포 인수를 위해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 부었고 코리아세븐을 통해 바이더웨이를 인수했다.
온라인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베이코리아는 2001년 옥션을 시작으로 G마켓까지 인수하며 한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기존의 온라인 유통업체들과 차별화한 서비스를 구현해온 쿠팡·위메프·티몬 등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온라인 유통시장의 외연은 눈에 띄게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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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 속에서 증권사·투자은행(IB)을 비롯한 금융권과 사모펀드(PEF)를 중심으로 한 투자자들 또한 먹거리 찾기에 분주했다.
롯데그룹은 매출 200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본격적으로 자금을 끌어들였다. 롯데쇼핑 해외주식예탁증서(GDR)를 런던거래소에 상장했고 일본계 자금도 대거 차입했다. 신세계와 이마트는 계열분리하며 주식시장에 분리상장 했고 각각 대규모 영구채를 발행했다. 두 그룹은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주요 점포를 인수하고 또는 매각과 유동화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금융권 가장 큰 고객으로 자리 잡았다.
PEF의 투자도 이어졌다. MBK파트너스는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 이랜드로부터 모던하우스를 인수하며 유통업에 관심을 쏟았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앞다퉈 소셜커머스 업체의 자금줄 역할을 자처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한 유통시장의 성장은 유사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PEF와 자산운용사들이 택배업체·물류센터 투자에 적극 나서는 계기가 됐다.
2015년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를 끝으로 유통시장에서 대규모 M&A는 사라졌다. 투자 열기는 한풀 꺾였지만 유통산업에서 기회를 엿보는 투자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중소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한 1000억원대 미만 M&A는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국내외 기업 또는 온·오프라인 업체들 간의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뚜렷한 투자 방향성을 찾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글로벌기업이 국내 시장에 직접 진출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유통기업이 '과연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느냐' 또는 '그러할 의지가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내 대형 PEF관계자는 "유통시장 성장에 대해 이견을 갖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고 실제로 대다수의 유통업체들이 꾸준히 현금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 유치나 M&A시장에 나왔을 때 관심을 갖고 있다"며 "다만 국내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또는 어떤 분야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투자는 자제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주식시장에도 반영돼 대형 유통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미 사업적인 성장보단 재무건전성의 '유지' 또는 기업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이슈에 맞춰져 있다.
그 동안 대규모 투자를 받아 성공 가도를 달릴 것만 같던 기업들이 수익성 악화에 재무부담이 심화하고 있는 점도 투자를 망설이는 요인이 된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물류센터를 사들이고 로켓배송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만해도 택배·물류 등 관련산업에 대한 관심이 컸다"며 "한국식 유통모델이 정착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지만 사실상 쿠팡의 시도가 실패한 것을 비춰볼 때 해당 산업에 대한 투자제안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의 예고된 지각변동에서 오히려 투자기회를 찾으려는 투자자들도 있다. 당장은 수년 앞을 전망하기 어렵지만 대규모 구조조정 또는 어느 정도 '서열정리'에 대한 밑그림이 나온 이후엔 본격적인 투자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PEF업계 한 관계자는 "아마존과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한국시장에 진출하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막론하고 유통업계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업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통합·합병(consolidation)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업환경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유통업체를 보유한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당분간 대형 M&A를 통한 사세확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SK그룹은 매각설이 끊이지 않았던 11번가에 대한 처리문제가 숙제로 남아있다. 7조원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는 투자회수 기한은 충분하다. 다만 홈플러스 점포 유동화에 대한 자본시장의 관심이 예년과 같지 않은 점, 대형마트 매출 감소세 등을 고려하면 성장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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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2월 1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