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코넥스, '질서있는 후퇴'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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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가 코넥스(KONEX) 상장사 한 곳을 관리하며 받는 수수료는 1년에 4000~5000만원이다. 실수익은 절반이다. 증권사 직원 한 명이 서너곳을 관리하더라도 인건비조차 충당하기 어렵다.
유동성 공급(LP) 과정에서 연간 1000~1500만원의 손실이 난다. 거래 활성화를 위해 의무적으로 호가를 제시해야 하는데, 거래량이 워낙 적다보니 통정매매로 시세를 조작한 후 증권사에 떠넘기는 '세력'이 날뛰어서다. 유동성 공급 주문도 트레이딩 부서를 통해서 해야 하다보니, 같은 사내지만 수수료도 부담해야 한다.
기업도 할말이 많다. 코넥스는 자본시장법상 제도권 시장이다. 코넥스 상장사는 상장사로서의 공시 의무를 부여받는다. 조세특례제한법상에선 비상장기업이다. 코넥스에서 거래되는 주가는 상속·증여 과정에서 '시장 가격'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의무만 있고 권리는 못 누린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한창 코넥스 띄우기에 나설 땐 코스닥 이전상장도 수월했다. 2016년 하반기부터 기류가 조금 바뀌었다.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상장 신청이 거부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코넥스 거래대금 규모 1위 툴젠이 대표적 사례다. 툴젠은 코스닥 이전상장 미승인 결정에 불복 사유서까지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코넥스에 설치된 차이니즈월(Chinese wall;정보차단벽)은 최근의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기조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코넥스에 기업을 상장시킨 지정자문인은 해당 기업에 지분 투자를 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코스닥 이전상장시 상장 주관사를 맡는 정도만 가능하다.
기업공개(IPO)를 담당하는 증권사 IB부서는 2~3년 전부터 내부 투자를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수수료(fee) 뿐만 아니라, 좋은 기업을 상장시킨 후 투자 차익도 내기 위해서다. 초대형IB 제도는 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 일부를 자사의 상장전투자(Pre-IPO) 펀드에 출자했다.
좋은 기업이라면 차라리 투자를 집행한 후 코스닥에 직접 상장시키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한 대형증권사 IPO 실무 담당자는 "다른 증권사가 상장시킨 코넥스 기업에는 투자가 가능하지만, 솔직히 속속들이 사정을 다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집행하려면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며 "IB의 투자를 유도하는 최근 정책과 지정자문인 제도는 어긋나있다"고 말했다.
정책에서도 소외됐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코스닥 활성화를 통한 자본시장 혁신방안'에서 코넥스는 '손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정책 논리가 '코스닥을 활성화시키면 코넥스도 활성화될 것'에 그쳤다. 거래소 경영평가에 활성화 정도를 반영한다지만, 사실상 거래소의 관심은 코스닥 조직 보강에 쏠려있다.
비상장 외부 시장인 K-OTC에서 거래되는 중견·중소기업 주식에 양도소득세를 면제키로 한 것도 코넥스엔 악재다. 제도권 상장 시장으로서 누리는 핵심 이점이 비상장 거래 시장에도 허용된 셈인 까닭이다.
이렇다보니 자본시장의 모든 흐름이 코넥스는 빗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전히 매주 증권사에 전화를 돌리며 코넥스 관련 진행상황을 체크하고, 상장을 권유하는 거래소 실무진을 측은하게 여기는 반응이 증권업계에서 쏟아질 정도다.
일각에서는 '1억원 이상 예탁금'규정을 없에 좀 더 많은 투자자가 코넥스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코넥스보다 실체가 불분명한 암호화폐 거래 시장엔 성인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의견도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여러 반박이 제기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있다. 지금의 코넥스 시장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154개 종목이 상장해 6조4000억원의 시가총액을 형성한 시장을 당장 철폐할 순 없다. 제도를 보완해 처음부터 불분명했던 특성화를 다시 시키거나, 질서있는 퇴장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전 정권의 유산 정도로 치부해 계속 눈을 돌리고 있는다면, 나중엔 정말 손을 쓸 수 없는 적폐가 될 수도 있다"는 한 증권사 코넥스 관련 실무자의 말이 허투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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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1월 19일 10:31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