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KW에 1兆 베팅했지만…매도자 몽니에 '쩔쩔'
M&A 미숙하다는 시장 시각 극복은 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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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이 주력 계열사들의 안정적 실적을 바탕으로 모처럼 순항하고 있다. 조(兆) 단위 적자에 빠졌던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은 손실을 줄였고, OLED TV ‘베팅’이 성공해 실적을 끌어올렸다. 또 다른 주축 계열사 LG화학도 호황을 그대로 누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시장의 시선은 그룹이 도약할 미래 먹거리 발굴, 그 수단인 인수·합병(M&A) 여부에 쏠린다. LG그룹이 M&A에 극도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점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변화의 불씨도 일부 보였다. 특히 1조원 빅딜인 ‘ZKW’의 인수 성패가 그룹의 달라진 모습을 투자자에게 내보일 시금석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LG그룹은 지난해 이후 M&A 시장에서 비교적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초 LG실트론 매각을 시작으로 LG전자 내 셋톱사업, LG CNS의 ATM사업, 반도체 계열사 루셈을 비롯한 비주력 사업 및 계열사 매각을 차례로 진행했다. 신성장사업을 이끌던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이 그룹 전체 경영을 총괄하며 나타난 변화로 평가된다. 다만 인수 측면에선 LG생활건강의 태극제약 인수 정도를 제외하곤 유의미한 결과를 보이지 못했다.
IB업계에선 올해 LG전자·LG화학·LG유플러스를 비롯한 주축 계열사를 중심으로 M&A 시장에 꾸준히 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전자는 신성장동력으로 점찍은 전기차 부품 및 로봇, 에너지 분야에서 매물을 찾고 있다. 사업 한 축인 스마트폰 사업의 기존 브랜드를 원점에서 검토할 정도로 힘을 빼는 상황에서 공백을 채울 신사업을 찾는 데 공을 들일 것이란 분석이다.
LG화학은 화학 및 배터리의 기초소재 분야에서 합작(JV)·지분인수를 통한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유플러스는 권영수 부회장이 직접 케이블사 인수를 검토 중이라 밝혔고, CJ헬로 인수에 뛰어들기도 했다. 양 사 모두 투자자 컨퍼런스 콜을 통해 향후 성장방향으로 적극적인 M&A도 열어두겠다 밝혔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은 LG전자와 ㈜LG가 공동으로 인수를 추진 중인 오스트리아 차량조명회사 ZKW 인수 성공 여부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간 5000억원 이상 M&A에 성공한 사례가 전혀 없었던 LG그룹이 1조원이 넘는 M&A를 단행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지난해 종결이 거론됐던 거래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매도자가 여전히 또 다른 후보를 끌어들여 가격을 올리는 등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점이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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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IB업계에선 LG그룹의 M&A 역량에 대한 의문이 컸다. SK그룹은 지주사 SK㈜부터 직접 ‘투자전문회사’를 내걸며 광폭 행보를 보였고,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로 두툼한 지갑을 내보인 점과도 대비됐다.
LG그룹 내에선 타 그룹 못지않은 의사결정 시스템은 충분히 갖췄다는 ‘항변’도 나온다. LG전자를 비롯한 주력 계열사들이 진출해 있는 해외 법인에 M&A 전담 부서를 꾸려 꾸준히 자체적으로 매물을 찾고 있다는 설명이다. 거래액이 일정규모를 초과하거나 계열사간 조율이 필요할 경우 지주사 ㈜LG가 협력하는 방식이다. 과거엔 계열사들의 재원 문제와 스마트폰 사업 적자를 비롯한 현업에서의 급한 불을 끄는 문제로 작동하지 못했을 뿐, 안정기에 오른 올해 이후엔 본격적으로 M&A를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LG그룹 M&A를 경험한 IB업계 관계자는 "과거 LG화학의 동부팜한농 인수전에서 매도자인 동부그룹을 벼랑 끝으로 몰아 가격을 깎던 점을 보면 M&A에 미숙하진 않은 것 같다“며 ”다만 이번 ZKW 인수전에선 인과응보로 매도자에 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설명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여전히 제조업 기반 연구조직의 입김이 강한 그룹문화 탓에 M&A에 적합한 조직을 꾸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이종산업간 ‘연결’이 점차 더 중요해지는 산업 환경 변화기에 LG그룹 내 보수적인 문화가 외부 인력 수혈 등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다.
최근 LG그룹 내에서도 각 계열사 내 M&A를 검토할 신사업조직을 확대하며 인력을 꾸준히 충원 중이지만 대부분 연구 인력들이 자리를 옮기는 데 그친다는 지적이다. IB, 로펌, 회계법인 등 실무를 경험한 인력을 외부에서 꾸준히 흡수하는 삼성 및 SK 심지어 현대차그룹과도 대조된 모습이다.
수년 전에는 그룹내 투자전담조직을 꾸리거나 수천억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등의 논의도 있었지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최근 삼성그룹은 미국 실리콘밸리 내 위치한 ‘삼성 넥스트’를 통해 해외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 투자를 독립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LG그룹 내에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에 전면에 나서며 가장 먼저 단행된 일이 선대 이건희 회장의 상징격인 삼성종합기술원의 규모 및 인력을 대폭 축소한 것”이라며 “결국 변화를 위해선 오너가 기존 조직의 틀을 전면적으로 깨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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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1월 2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