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쏠림 현상, 그 이후도 생각해봐야 해"
"시세차익 만을 위한 비트코인 투자는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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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투자는 '광풍'이 되었고, 정부가 기름을 부은 코스닥 시장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셀트리온 3형제가 주도하는 바이오 장세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오죽하면 투자자들 사이에선 암호화폐가 없거나, 셀트리온 주식이나, 하다못해 강남에 집 한채라도 없으면 '3바보'라 불리운다. 말 그대로 '혼돈의 시기'다.
만만치 않은 시장 환경에서도 십수년 이상 일관된 투자원칙을 고수하는 한 투자자가 있다. 저평가된 주식에 장기간 투자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고수하는 '가치투자의 대가'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사장(사진)이다.
셀트리온 등 '성장주'의 주가가 무섭게 오를땐 허 사장의 투자원칙은 빛을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코스닥 활성화를 한다고 억지로 비중을 늘리진 않을 것이다. 바이오나 벤처 기업은 우리 펀드의 투자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코스닥과 바이오 열풍에 대한 그의 통찰이 궁금했다. 코스닥 지수는 최근 16년만에 900선을 돌파했다. 허 사장은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과 코스닥 활성화 대책이 코스닥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스피가 게걸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스닥에 올라타 펀드 수익률을 올릴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투자에 있어서는 정책변화와 같은 투자환경의 변화는 고려할 요인이긴 하나, 단지 그것만으로 우리의 투자 철학과 안 맞는 종목을 사면서까지 코스닥 투자 비중을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최근 바이오 장세에 대해서도 투자자로서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다. 2000년 닷컴 버블, 2007년의 소재·산업재 장세, 2011년 자동차·화학·정유 장세, 2015년 중소형성장주 장세, 2017년 반도체 장세 그리고 작년부터 이어오는 바이오 장세까지 쏠림장세는 당시에는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끝은 항상 행복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쏠림 장세에서 살아 남아 잘 성장한 기업도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라며 "지금의 바이오 열풍 속에서 분명히 좋은 기업이 탄생할 수 있지만, 상황이 바뀌었을 때 투자자로서 본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업과 자산의 숨겨진 가치를 꿰뚫어보는 그의 눈에 최근 암호화폐 광풍은 어떻게 비칠까. 그는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에 대해 '투자냐 투기냐'의 문제를 떠나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은 보여줬다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고민 없이 무턱대고 시세차익을 위해 매매에만 휘둘리는 것 자체는 투기일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허 사장은 "금본위 제도를 벗어나면서 현재의 법정화폐들은 사실상 종이조각에 정부가 그 가치를 보장하고 화폐로서 통용력을 부과한 것이"라며 "따라서 누군가가 가치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 비트코인의 경우에는 그것이 사회에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을 건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셀트리온은 불과 반년 사이에 주가가 3배 올랐다. 특히 최근 3주 사이 50% 급등했다. 비트코인은 지난해 연초 대비 최고 10배 이상 가치가 뛰었다. 긴 호흡으로 장기적인 수익을 쌓아가는 가치주 투자에 의문이 생길 수 있는 지점이다. 허 사장에게 '이런 시대에 왜 가치투자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허 사장은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볼 것을 주문했다. 주식시장에선 탐욕과 공포가 반복되었고 거기에 휘말린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살아남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한해 한해 수익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10년, 20년 장기로 투자할수록 복리 효과가 더해져 눈덩이처럼 자산이 불어날 수 있는 것이 가치투자다"라며 "100세 시대에 노후를 위한 대비를 위해서는 일확천금을 노리기 보다는 가치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자산을 안정적으로 불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무엇을 관심있게 보고 있을까. 허 사장은 국내 소비 개선세를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정책의 최우선 방향을 고용 증대와 소득증대로 두고 있는 만큼, 하반기에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예상이다. 사드보복으로 인한 중국 여행객감소도 점차 정상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점을 감안해 1년 전부터는 백화점, 할인점, 홈쇼핑 등 유통업종의 대표주들의 투자 비중을 늘려왔다. 여행업종, 외국인카지노 업종에 대한 투자도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음식료, 의류업종도 관심을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그가 생각하는 '좋은 기업'이란 어떤 기업인지 물었다. 허 사장은 '주주를 고려하는 합리적인 대주주와 최고경영진'을 첫 손에 꼽았다. 허 사장은 "대주주나 경영진이 주주를 도외시하고 주주에게 피해가 가는 결정을 한다면 아무리 좋은 회사라고 하더라도 믿고 투자할 수 가 없다"며 "항상 투자할 때 과거에 그런 행태를 보인 회사들은 투자 대상에서 배제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치투자 1세대라 불리는 허 사장은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사장에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7월 출시한 '신영마라톤중소형' 펀드는 목표로 했던 설정액 3000억원을 3개월만에 달성해 소프트 클로징(점진적 판매 중지)에 들어갔다. 당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진 않지만, 투자자들은 그의 투자철학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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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1월 2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