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조 공모주 펀드에 배정분은 고작 20%
코너스톤까지 도입되면 '쭉정이만 먹으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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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놓은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의 불똥이 애꿏은 자산운용업계로 튀고 있다. 기업공개(IPO) 투자 수요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왔던 공모주 펀드가 '쭉정이'로 몰락할 신세가 될 우려가 높아서다.
수요 기반이 위축되면 정부가 내세운 코스닥 IPO 활성화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에는 '코스닥 벤처펀드 투자액 10% 소득공제 및 공모주 30% 우선 배정' 방침이 담겼다. 1996년 도입됐지만 사실상 사문화됐던 코스닥 벤처펀드를 부활시켜 코스닥으로 자금의 물꼬를 트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운용업계와 증권사들이 우려를 표시하는 부분은 '공모주 30% 우선배정'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IPO때 모집 혹은 매출하는 주식의 20%는 우리사주조합에, 20%는 개인투자자 일반청약에, 10%는 하이일드펀드에 우선 배정된다. 공모주 펀드를 포함해 일반 기관투자가들은 나머지 50%의 물량을 나눠받았다.
정부는 이 중 30%를 따로 떼어내 코스닥 벤처펀드에 우선 배정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반 기관들은 나머지 20%의 물량을 가지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당장 현 시점 기준 2조8000억원 규모로 설정돼있는 공모주 펀드의 수익률 악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공모주 펀드는 평소 자산의 대부분을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운용하다 IPO 공모에 참여해 플러스 알파의 수익을 노린다. 공모주를 적게 배정받으면 그만큼 수익을 낼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
한 운용사 운용역은 "코스닥 IPO를 활성화하겠다면 투자 기반을 넓혀주는 방식으로 가야지, 특정 투자 유형에 특혜를 주는 방식은 곤란하다"며 "공모주 펀드 수익률이 낮아지면 그만큼 자금 유입이 줄어 전체 공모주 펀드 규모가 줄어들고, 수요 기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벤처펀드는 일반 자산운용사도 설정할 수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상 '벤처기업투자신탁'이라는 이름으로 투자신탁 라이선스가 있는 금융회사에게 운용 자격이 주어진다.
그럼에도 지난 20년동안 단 1개, 150억원 규모의 펀드만 운용됐다. 벤처기업 신주에 자산의 50% 이상을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창업투자회사나 벤처캐피탈이 아닌, 일반 자산운용사가 손 대기 어려운 상품이었다.
정부는 코스닥 벤처펀드의 운용 제한을 완화해 '벤처기업 신주 15%, 벤처기업 해제 후 7년 이내의 코스닥 상장사 신·구주에 35%'만 투자하면 되도록 했다. 그럼에도 운용사들은 손사레를 치고 있다. 공모주 펀드와 투자 형태와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아예 다른 상품인 까닭이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실무자는 "공모주 펀드는 전형적인 이벤트 드리븐 전략의 펀드로 안전자산 비중을 증시 상황에 따라 조정하며 저위험 중수익을 노리는 형태"라며 "벤처 및 코스닥 기업 주식을 6개월 단위로 50% 이상 보유해야 하는 벤처펀드는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펀드로 운용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현실화할 가능성은 적지만,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코너스톤 투자자(초석 투자자) 제도까지 시행되면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남아있는 20%의 배정 물량마저 코너스톤 투자자가 '선점'하면 일반 기관들은 아예 갈 곳이 사라지는 까닭이다.
물론 당장 이 위험이 현실화한 것은 아니다.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과 금융투자협회 인수업무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실제로 코스닥 벤처펀드가 얼마나 만들어질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 증권가에서는 이해 상충을 유발하는 정부의 탁상행정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른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최악의 경우 다른 기관이나 펀드에서 선점하고 남은 찌거기만 일반 운용사 및 공모주 펀드에 떨어지게 될것"이라며 "답답하면 코스닥 벤처펀드를 만들라는 말인데 수익률을 책임져줄 것도 아니면서 너무 무책임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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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2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