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차 플랫폼 마련·빅데이터 수집 등 활용도 높아"
협상 최종단계서 무산…AJ네트웍스에 중고차 사업 제안도
"최종 결정권자 이해도 부족, 비일비재한 일"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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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렌터카 인수 실패는 현대차에 뼈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현대차는 미래자동차 연구 조직을 신설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계획해 왔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자율주행에 필요한 기술 습득에 총력을 기울였다.
AJ렌터카는 현대차의 유력한 인수 대상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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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렌터카는 자동차 렌탈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자동차 렌탈 시장 성장성에 주목한 SK그룹과 롯데그룹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영업환경이 어려워졌다. 금융리스와 운용리스 등 소비자의 자동차 소비패턴이 변화하면서 금융사들도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높은 신용도를 이용해 낮은 조달 비용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대기업들은 꾸준히 점유율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AJ렌터카는 그 반대다.
그룹에서 AJ렌터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지주회사인 AJ네트웍스 입장에서도 주력사업인 AJ렌터카를 매각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경쟁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가는 데 한계에 부딪혔고 그나마 높은 기업가치(밸류에이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점에 매각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AJ렌터카의 매각 가능성은 수년째 거론돼 왔다. 지난해 12월 AJ렌터카는 '최대주주인 AJ네트웍스가 AJ렌터카의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분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지분매각을 공식화했다.
AJ렌터카 지분은 현대차는 물론, SK그룹도 관심을 보였다. AJ네트웍스가 주력사업을 떼내는 대신 현대차는 중고차 사업을 제안했고, SK는 차량 경정비 사업을 맞바꾸는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에서 중고차 사업(중고차 경매)은 현대글로비스가 전담한다. SK그룹은 SK네트웍스의 카라이프(Car-Life) 사업 내 '스피드메이트'를 통해 차량 정비 사업을 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에서 중고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기준 약 3%, SK네트웍스에서 스피드메이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8%다. 두 사업 모두 주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고차 매매업(소매업)'과 '자동차 전문 수리업' 모두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는 탓에 현대차와 SK와 같은 대기업의 사업확장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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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AJ렌터카를 인수해 주력 사업으로 밀고 있는 수소연료전지차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소연료전지차를 양산하고 있는 현대차는 최근 '넥쏘(NEXO)'를 출시하며 호평을 얻고 있지만 충전 인프라는 거의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다. 전국의 수소차 충전소는 전국에 12곳, 연구용을 제외하면 7곳에 불과하다. AJ렌터카의 전국 지점 133곳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에서 카셰어링·카헤일링(차량 호출) 등 차량공유 업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기업은 현대차가 유일하다. 자율주행에 있어 필요한 지도구현(Mapping)기술과 운전자의 운행 습관 등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특정 다수의 운전자의 자료를 수집하는 데 '공유 차량'이 가장 효율적이란 평가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자율주행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꾸준히 기술개발을 이어가기 위해선 빅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창구(기업)가 필요하다"며 "이 같은 맥락에서 AJ렌터카 인수를 추진했고 실제로 인수 효용 가치에 대해 애널리스트를 비롯해 시장 관계자들이 대부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현대차의 AJ렌터카 인수는 무산됐다. AJ렌터카는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지 열흘 만에 AJ네트웍스가 "지분매각을 더는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내부에선 경영진은 물론이고 정의선 부회장 또한 인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협상 막바지에 '인수 불가' 통보를 받은 AJ네트웍스 경영진들 또한 현대차의 최종 결정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를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의 말을 통해 그 배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현대차 내부에서 이 같은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연구개발에 힘쓰며 미래먹거리 확보에 절실함을 느끼고 있는 전문 경영진과 달리 최종 결정을 내리는 측에선 신사업과 이에 대한 투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럭시 지분을 사자마자 매각하고 현대캐피탈의 딜카에도 전혀 힘을 싣지 않는 모습에 비춰볼 때 최고 결정권자의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한차례 무산됐지만 협상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평가도 있다.
AJ네트웍스 또한 새로운 사업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야 하고 투자재원 마련도 절실하다.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비교해 다소 뒤늦게 출발했지만 정의선 부회장을 필두로 미래먹거리 확보에 그룹의 사활을 걸고 있다. 신사업에 2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계획은 정의선 부회장 체제가 공고해질수록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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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3월 12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