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내에서도 입지 좁아져
내부에선 쉬쉬하면서도 "타격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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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속도를 내면서 금융계열사들 미래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때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부회장이 현대차 금융그룹 수장이 될 것이란 말들도 나왔지만 지금은 현대카드 부진과 현대라이프 적자 등으로 입지는 많이 좁아졌다. 재계에선 ‘사위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다’란 말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정태영 부회장은 현대가(家) 사위 중 소위 가장 잘 나갔다. 종로학원을 세운 정경진 원장의 아들로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정몽구 회장의 둘째 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과 결혼했다.
입사는 현대종합상사 기획실이었다. 뒤이어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과 기아자동차 구매총괄본부를 거쳤다. 본격적으로 현대차 금융계열사 경영에 뛰어든 것은 2003년이다. 당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부사장을 맡으면서 일약 재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미지 마케팅을 통해 ‘남성적’·‘권위적’이라고 표현되던 현대차그룹에 ‘감성’을 입혔다는 찬사를 받았다. GE 경영진들이 현대카드의 마케팅을 배우겠다고 본사를 방문하기도 하고, 해외 유수의 MBA에서 우수 사례로 인용됐다.
지난 2012년에는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현대라이프를 출범시켰다. 당시 정 부회장은 출범 2년 이내에 흑자 전환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2014년 말에는 가지고 있던 종로학원 지분(73%)을 입시업체인 하늘교육에 매각했다. 알려진 매각금액은 총 1100억원 규모다. 이 자금을 추후 현대차 금융계열사 지분인수에 쓸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사실상 현대차 금융그룹 수장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현대카드 시장점유율은 15% 수준에서 수년째 횡보하고 있다. 한때 현대카드의 상징인 이미지 마케팅은 회사의 수익을 갉아먹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GE와 결별하고 사모펀드(PEF)를 새로운 재무적투자자(FI)로 유치하면서 경영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해묵은 자동차 제휴 카드를 다시금 꺼내 들면서 현대·기아차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현대카드는 곧 정태영'이라는 인식이 약해지게 된 계기다.
현대라이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뒤 누적순손실이 2270억원(지난해 상반기 기준)에 달한다. 매년 누적된 적자로 현대라이프의 지급여력(RBC)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48.0%를 기록, 금융당국의 권고치(150%)를 밑돈다. 지난 28일에는 대주주인 현대모비스가 3000억원 규모의 증자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현대라이프 경영권은 대만의 푸본생명에 넘어가게 생겼다.
재계에선 결국 정태영 부회장이 ‘손에 들고 가는 것은 없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 그나마 정 부회장이 금융계열사를 가져간다면 현대커머셜 정도가 언급된다. 본인과 부인인 정명이 씨가 5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대차그룹에서 쉽사리 내주긴 어려울 것이란 견해가 많다. 그룹에서 현대커머셜의 상용차 금융 이용금액이 90%에 육박한다. 자동차 비즈니스와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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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현대카드를 버리면 버렸지 현대커머셜을 떼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대라이프의 실패는 경영인 정태영의 명성뿐 아니라 금융그룹 수장(首長)의 꿈도 앗아갈 가능성이 크다. 내부에선 쉬쉬하면서도 정 부회장의 입지에 영향이 있을 것이란 말들이 나온다. 현대라이프뿐 아니라 경영에 참여하는 카드·캐피탈·커머셜에서도 입지가 흔들릴 것이란 분석이다.
투자금융(IB)업계 관계자는 “카드, 증권 등이 현대차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도 결국 그룹의 우산 안에 두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라며 “그런 관점에서 정 부회장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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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4월 01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