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사 발등의 불, 손실 커지고 경영 차질도
당국과 갈등 꺼리는 회계법인들도 보수적 평가
-
금융감독원의 연구개발(R&D)비 회계처리 테마감리 압박이 커지자 바이오 업계는 몸을 사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무리하게 회계처리를 했다가 시범 사례로 찍히거나 감독당국과 척을 지기 부담스럽다. 기업들은 부득이 손실을 감수하거나 감독당국의 이의 제기를 피할 방안을 찾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이오 기업들은 R&D비용 중 상당 부분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해 손실은 줄이고 이익은 늘리는 효과를 얻어 왔다. 성장 단계마다 좋은 성적표가 필요했고 이 같은 회계처리는 관행처럼 굳어졌다.
-
문제는 회계처리가 자의적이고 투자자 보호에도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개발비의 무형자산 인식 기준은 규정하고 있지만 판단과 결정은 기업들의 몫이다. 임상 초기부터 자산으로 잡았다가 개발에 실패하면 대규모 손실 반영이 불가피 하고 투자자도 피해를 본다.
문제가 계속되자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개발비 인식·평가의 적정성’을 올해 테마감리 회계이슈로 사전예고 했다. 1월말엔 개발비 회계처리 테마감리 실시 계획을 밝혔고, 지난달엔 바이오 기업의 사업보고서에서 연구개발 활동 현황을 중점 심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금감원은 “새로운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고 도입된 지 8년이나 된 IFRS 기준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살펴 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바이오 업계에선 너무 급작스레 규제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감독당국에 맞설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회계처리 방식을 바꾸거나, 대응책을 찾지 못해 된서리를 맞는 사례가 속출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차바이오텍을 4년 연속 영업손실을 이유로 관리종목 지정했다. 회사는 흑자전환 사업보고서를 기대했으나 감사인 삼정회계법인은 R&D비용을 엄격하게 따져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봤고 한정의견을 냈다.
진단키트 제조사 젠바디도 2017년 사업보고서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다. 감사인 삼덕회계법인은 재고자산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젠바디는 올해 상반기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1조원대 대어로 꼽혔지만 일정을 연기해야 할 처지다.
제넥신은 최근 2년간 R&D비를 전액 비용처리하며 적자폭이 커졌다.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아 흑자 전환하겠다는 계획과 멀어졌다. 바이로메드와 아미코젠 등도 R&D비용 자산화에 대한 내부 회계정책을 변경하며 적자가 늘었다.
기업뿐만 아니라 회계법인들도 위축된 상황이다. 기존 관행처럼 회계처리를 하자니 금감원이 껄끄럽다. 평가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불려 다니는 것도 부담스럽다. 차라리 기업의 불만을 감수하는 쪽을 택하는 분위기다.
차바이오텍은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흑자를 확신했고 감사인과도 어느 정도 뜻을 모았다. 그러나 금감원의 압박이 커지자 갑자기 R&D비의 비용 처리가 늘어났고, 적자 사업보고서가 작성됐다. 감사인은 관리종목을 피할 수 있도록 회사가 과거 회계처리 방식대로 올리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 한정의견을 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지만, 거래소는 원래 사업보고서를 유지하라고 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사업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감정이 틀어지고 감사업무를 다시 따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감사인은 굳이 기존 결과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며 “거래소도 어느 정도 기업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여지가 있겠지만 괜히 부담을 지기는 싫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R&D비용 회계 정책을 크게 수정하기 어렵다면 아예 잡음을 일으키지 않는 길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지분율 94.6%)가 매년 R&D비로 수천억원을 지출하고 일부를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회사는 R&D비용 회계처리뿐 아니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불거진 분식회계 문제와도 얽혀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작년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특별 감리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감사인은 독자적으로 R&D비용 회계처리를 하기 부담스러워 했다. 의뢰를 받은 외부 기관들도 모두 손을 내저었다. 합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금감원과 껄끄러운 관계가 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결국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 본사에 평가를 의뢰했다. 실력보다는 문제가 생겨도 금감원이 직접 확인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현실적 이유가 고려됐을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4월 0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