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시장 냉각 방아쇠 될 가능성 언급
"녹색펀드·통일펀드 전철 밟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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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1조원대로 성장한 코스닥 벤처펀드가 기업공개(IPO) 시장 급락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별 펀드들이 경쟁적으로 공모주 물량 확보에 나서며 수요예측이 유명무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코스닥 벤처펀드는 출시 8영업일만인 지난 16일 판매액 1조1000억원을 돌파했다. 급성장세에 편입자산 확보를 우려한 운용업계는 대부분 추가 판매를 주저하고 있다. 코스닥 벤처펀드 중 가장 큰 규모로 공모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KTB자산운용도 19일 소프트클로징(일시판매중단)을 단행했다.
코스닥 벤처펀드 인기의 상당부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어온 IPO 공모주 훈풍에 기반했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지난해 코스닥 공모주의 상장 후 7일, 30일 평균 수익률은 20%를 훌쩍 넘었다. 올해 1분기 공모주 평균 주가 상승률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코스닥 벤처펀드에 몰린 자금의 상당수는 벤처기업 코스닥 공모주 30% 우선배정 혜택을 노리고 있다. 올해 1분기 일반 공모주 펀드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0.9%로, 공모주 평균 주가 상승률의 50분의 1에 그쳤다. 투자 물량 확보가 제대로 되지 못한 탓이다. 코스닥 벤처펀드는 우선배정 혜택으로 이런 아쉬움을 달래줄 대안으로 떠올랐다.
문제는 이런 기대가 수익률로 돌아올 수 있느냐다.
IPO업계에서는 코스닥 벤처펀드가 공모 시장을 교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코스닥에 입성하는 벤처기업의 평균 공모 규모는 200억~300억원 안팎이다. 이 중 기관투자가 배정분(60%)의 절반이 코스닥 벤처펀드에 우선 배정된다. 공모 한 건당 60억~90억원 정도다.
기관이 참여하는 IPO 수요예측엔 항상 허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경쟁률이 보통 20대 1이 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신청해야 원하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까닭이다. 당장 60억~90억원의 배정 물량을 두고 52개 운용사의 93개 코스닥 벤처 펀드가 매 공모마다 1조원 안팎을 '풀 베팅'하는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IPO 실무자는 "1건의 코스닥 벤처기업 상장에서 소진되는 코스닥 벤처펀드 자산은 고작 0.3~0.4%에 불과하다"며 "지금처럼 공모주 급등 추세가 이어진다면, 먼저 공모주를 최대한 많이 담은 펀드가 좋은 수익률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코스닥 벤처펀드간 경쟁의 초점은 '물량 확보'에 맞춰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현장의 우려다.
일반적으로 수요예측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도태되고, 기관의 경쟁을 통해 시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모가가 결정된다. 수요예측의 자정작용 기능이다. 코스닥 벤처펀드가 물량 확보를 위해 '공모가 최상단 풀 베팅'을 반복한다면 이 기능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코스닥 벤처펀드의 경쟁으로 인해 확정공모가가 높아지면, 그만큼 펀드에 돌아오는 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오히려 적정가격 이상으로 공모가가 결정되며 상장 후 주가가 급락하는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다른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공모주 시장은 흐름에 민감하기 때문에 몇 차례 상장 후 주가 급락 사례가 반복되면 삽시간에 시장 전체가 얼어붙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코스닥 벤처펀드도 메자닌 펀드와 다를바 없는 전략을 취하거나,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코스닥 구주 투자로 자산을 채울 수 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수익률이 기대치만큼 따라가지주지 못하면 환매가 이어지며 코스닥 벤처펀드 역시 수많은 '정책성 관치 펀드'의 선례를 밟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정권에서 힘을 실어준 녹색성장펀드나 통일펀드, 소득공제장기펀드는 예외없이 초기 주목→수익률 부진→청산의 전철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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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4월 2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