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공모가 고평가'...수요예측 참패 불러
-
SK루브리컨츠가 기업공개(IPO)를 또 다시 철회한 것은 시장의 눈높이에 가격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라이싱(가격 책정) 전략이 원점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공동대표주관사인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책임론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SK루브리컨츠는 지난 25~26일 국내외 기관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공모희망가 밴드가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잘해야 공모희망가 밴드 중하단 정도로 공모가가 정해질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SK루브리컨츠는 수요예측 마지막 날까지 해외 롱펀드(long-fund;장기투자펀드)에 희망을 거는 모습이었다.
27일 아침 심창찮은 조짐이 보였다. SK루브리컨츠가 일부 국내 기관을 접촉해 '공모희망가 밴드 그 아래로라도 투자할 의향이 없냐'고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해외에서의 세일즈도 성과가 좋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SK루브리컨츠는 공모희망가 밴드 최하단으로도 기관 배정 물량을 청약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자 결국 공모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SK루브리컨츠 상장은 공모신고서를 제출한 그 순간부터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휩싸였다. 회사가 공동대표주관사단과 함께 제시한 '적정 시가총액'은 주가순이익비율(PER) 기준 15배에 달했다. SK이노베이션이나 에쓰오일 등 동종업계 대비 최대 50%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할인율을 적용해도 동종업계 대비 20% 이상의 프리미엄을 줘야 하는 수준이었다.
SK루브리컨츠는 설명회(IR) 과정에서 비슷한 지적이 이어지자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배당성향·시장전망 등을 근거로 밸류에이션(가격) 합리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 결국 기관들이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수요예측이 흥행에 참패했다.
공모희망가 밴드는 발행사와 대표주관사단이 논의해서 결정한다. 대표주관사는 발행사에 시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고, 발행사가 만족할 수 있는 공모가를 권고해야할 책무가 있다. 결국 이번 SK루브리컨츠의 상장 실패는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애초에 밴드가 합리적이어야 투자 논의도 하고 기업 분석도 하며 적정 공모가를 산정하는 것"이라며 "시장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밴드라고 생각해 내부에서 투자를 깊게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자업계 일각에서는 '또 한국투자증권이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의 IPO 프라이싱은 증권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자자보다는 발행사 위주의 공모희망가 밴드를 제시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IPO 시장에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이 그 해 상장시킨 11개 기업 중 10곳의 주가가 공모가 이하로 떨어져서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이 카카오게임즈 상장 주관을 따내자, '카카오게임즈가 합리적인 공모가를 제시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삼성증권 역시 지난해 ING생명보험에 이어 조 단위 대규모 IPO 주관에 나섰지만 결국 성공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IPO 부서 인원을 확충하고 관련 트랙레코드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상황이라 실패가 더 뼈아플 거란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사 IPO 실무자는 "지난해 삼성증권이 주관사로 참여했던 ING생명 IPO도 그 당시에는 공모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며 "인력을 크게 줄이고 다시 확보하는 과정에서 프라이싱 노하우를 상당부분 잃어버린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SK루브리컨츠 상장에 삼성증권에서는 신원정 IB사업부장(전무)과 김병철 기업금융1사업부장, 김준한 IPO팀장이 참여했고, 한국투자증권에서는 배영규 IB1본부 상무와 최신호 기업금융부 이사가 총괄을 맡았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4월 27일 15:0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