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상장 오일뱅크는 보수적 자세 취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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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루브리컨츠 기업공개(IPO) 철회의 여파는 동종업계인 현대오일뱅크에도 미칠 전망이다. 아무리 정유업계가 호황 싸이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나와도, 투자자들의 마음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한 까닭이다.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철저히 보수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27일 SK루브리컨츠의 상장 철회 소식이 전해진 직후 NH투자증권·하나금융투자·씨티글로벌마켓증권·메릴린치 등으로 구성된 현대오일뱅크 상장 주관사단은 술렁였다. 철회가 미칠 파급효과를 가늠하는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현재 현대오일뱅크 주관사단은 서울사무소에 상주하며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SK루브리컨츠는 현대오일뱅크도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삼고 있는 고급 윤활기유(그룹III) 부문 세계 1위 업체다. 지난해 최대주주에 대한 총 배당액도 3000억원대로 비슷했다. SK루브리컨츠가 상장에 성공했다면 이후 주가 추이는 현대오일뱅크 공모가에 영향을 줄 전망이었다.
SK루브리컨츠에 대한 시장의 시각은 냉정했다. 특히 공모가 측면에서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등 기존 상장사와 비교해 '프리미엄'을 줄 생각이 없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윤활기유의 수익성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결국 글로벌 유가 추이 및 스프레드에 따라 변동되기 때문에 '특별 대접'은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전기차 시대'를 언급하는 목소리도 나왔다는 것이다. 전기차나 수소차 등 석유를 대체하는 차세대 에너지원을 활용한 차량이 상용화되면 기존 내연엔진과 내연엔진에 최적화된 연료·윤활유의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요컨데 정유업체는 '미래 가치'를 담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유업체는 IT나 바이오에 '올인'하는 최근 공모주 투자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연기금 투자 담당자는 "SK루브리컨츠는 눈높이를 낮추고 배당주 매력과 덩치에 따른 포트폴리오 투자로서의 이점을 투자자들에게 좀 더 어필했어야 했다"며 "고급 윤활기유 세계 1위라는 '브랜드 가치'를 공모가로 인정받으려고 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격"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각에서는 현대오일뱅크도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현대오일뱅크 역시 공모 구조상 모회사 현대로보틱스의 구주매출이 상당부분 포함될 수밖에 없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91%에 달해 거래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매출이 불가피하다. 현대오일뱅크 IPO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로 거듭난 현대로보틱스의 자금 확보 수단이기도 하다.
SK루브리컨츠는 구주 매출이 상당부분 포함되며 기관들로부터 '회사에 실제 유입되는 자금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 투자하고 성장할 것이냐'는 지적을 일부 받기도 했다. 에쿼티 스토리(equity story)의 문제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이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일단 공모 일정을 하반기에 계획하고 있는만큼, 주관사단과 협의해 최적의 시점과 가격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2년 당시 모회사였던 현대중공업의 사정으로 상장을 한 차례 철회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0년 금융비용을 포함, 주당 2만원 안팎에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매입했는데, 당시 실적으로는 주당 2만원 이상의 공모가를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는 2016년 7370억여원, 지난해 9780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2년간 총 6200억여원을 배당했다. 일부 투자 회수가 이뤄진데다, 지주회사 전환과 자금 확보라는 더 큰 대의명분이 생긴만큼, 이제는 현대오일뱅크가 공모가 이슈에서 다소 자유로워졌다는 관측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는 좀 더 시장과 긴밀히 소통하며 프라이싱 전략을 수립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현대오일뱅크가 상장에 성공하면 반대로 SK루브리컨츠가 이를 참고해 새로운 상장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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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5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