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소통해야 할 대상으로 봐야
국내 시장도 주주자본주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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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현대모비스 분할합병 실패는 그룹 차원의 집단 논리가 특정 계열사의 주주들의 이해관계에 가로막힐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주자본주의가 서서히 성숙하면서 주주들이 '설득해야 할 객체'가 아니라 '소통해야 할 주체'로 떠올랐지만 현대차그룹은 미처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현대차그룹의 '뒷북 주주관리'는 이전부터 논란이 적지 않았다. 주주보다는 정몽구 회장 일가를 위한 의사 결정을 내린 후, 주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대책을 내놓는 일을 반복해왔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도 마찬가지였다.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을 발표한 뒤 주가가 급락하고 주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지난 2일 자사주 매입·소각과 중간배당을 발표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지난 11일 일부 외신 기자 앞에 직접 나선 것도 결국 주주들의 반발이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막상 이런 시기에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뒀던 그룹내 조직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일단 분할합병안 발표 이후 시장에서는 '주주권익보호 담당위원'은 대체 어디 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대모비스는 앞서 지난해 윤리위원회를 '투명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사외이사 중 1명을 주주 소통 담당으로 지목해 선출했다.
한 연기금 투자 담당자는 "주주권익을 보호하는 담당위원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현대차는 주주를 항상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명경영위원회나 담당위원 제도가 도입된 것도 역시 '사건'이 벌어진 후에 일이다. 이 제도들 모두 지난 2014년 한전 부지 매입 당시 주주들의 반발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당시에도 '뒷북 챙기기'라는 논란이 일었다.
현대차그룹이 한전 부지에 감정평가액의 3배인 10조5500억원을 베팅하자, 외국인 주주를 중심으로 실망 매물이 쏟아지며 현대자동차 주가가 고점 대비 30% 넘게 하락했다. 당황한 현대차그룹은 '배당 확대 등 적극적인 주주친화정책을 펼치겠다'며 등 돌린 주주들을 설득했다.
지난 2010년 현대건설 인수 때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전하자 외국인 주주들을 중심으로 회의론이 일었다. 외국인 주주들의 매도세가 몰리며 2010년 8월 한때 고점대비 20% 가까이 주가가 하락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후 정몽구 회장이 직접 사내이사를 맡아 책임경영을 하겠다며 주주들을 달랬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이 그간 주주들을 대해온 방식이 주주 자본주의 시대에는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현대모비스의 이번 임시 주주총회 준비 과정은 삼성물산의 모습과 비교된다.
2015년 7월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자본시장에서 화제가 됐던 것 중 하나는 '수박을 든 삼성물산 직원들'이었다. 대규모 직원이 동원된 위임장 수집은 당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논란과는 별개로 어쨌든 주주들을 찾아가는 삼성물산의 '성의'에 일부 개인 주주들이 우호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도 사실이다.
현대모비스는 관련 업무를 재무 및 IR(투자자관계) 부서에 할당했으며, 홍보 등 일부 조직이 이를 보조했다. 개별 주주들과의 접촉은 언론을 통한 고위급 인사의 인터뷰, 입장문, 전화와 우편물 등으로 갈음하는 모양새였다. 대신 그룹 차원에서 외국인 주주 접촉을 크게 늘렸다. 이를 두고 중소형 기관투자가 사이에선 '철저한 공중전'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온도차는 주주 구성의 차이에서도 일부 비롯됐을 거란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결국 현대차그룹은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스튜어드십 코드가 전격 도입되는 등 국내 자본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주주자본주의가 태동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ISS 등 의결권 자문사들의 발언권도 대폭 강화됐다.
과거처럼 정부 혹은 현 정권의 정치적 스탠스에 괘념치 않고 "어떤 방안이 회사의 주인인 주주에게 가장 이익이 되느냐"를 두고 따진다는 의미다. 같은 맥락에서 올해 초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백복인 KT&G 사장이 논란을 빚었음에도 연임에 성공한 배경에도 결국 자문사의 찬성 권고와 기관 주주들의 일관된 지지가 있었다는 평가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5대 의결권 자문사들이 모두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에 '반대 권고' 의견을 낼 거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자문사들 역시 주주들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더이상 주주총회도 '요식 절차'가 아닌, '주식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자리잡게 됐다는 평가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경영권이 불확실한 계열사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현대차는 주주와의 소통이 어색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일로 인해 현대차그룹도 얻은 교훈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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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5월 22일 10:3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