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편법' 양산하는 꼼꼼한 규제도 '개편' 한 목소리
'기본'은 주주와의 소통..."우호 주주가 앨리엇 막아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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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합병 철회의 근본 원인은 '시대의 변화'에 제도와 인식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데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국내 기업들이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합병비율 산정방식 손질과 같은 제도적 변화와 더불어 기업이 자본시장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법은 상속 및 증여세법으로 비상장주식에 대한 가치평가 방식을, 자본시장법으로 합병비율 산정 방식을 명문화하고 있다.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지만, 이제는 국내 자본시장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이란 게 지배구조 전문가들의 평가다.
의결권 자문업체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현행 법규상 합병가액 산정을 한달 주가로 결정하게 돼있는데 이는 '가격 조작'의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최소한 6개월 이상 가격 추이를 두고 산정하도록 해야 자의성이 최소화된 합리적 가격 도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시와 이사회 책임 강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 합병가액을 '협의 가격'으로 자율적으로 산정하도록 허락하고 있다. 대신 산정 근거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공시를 요구(미국)하거나, 이사회가 합병제안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 관행(독일)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은 "합병을 한다면 두 회사가 각각 자문사와 회계법인을 선정해 대등한 입장에서 비율을 산정하고 협의해야 하는데, 국내 대기업 계열사간 거래는 이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지배주주가 아닌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꼼꼼한 규제가 '합법적 편법'을 만든다는 평가도 있다. 명문화된 법규에 따라 주식 가치와 합병비율을 산정 하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산정한 가치와 합병비율이 '합리적'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예컨데 이번 현대모비스 분할 합병에서 외국인 등 소수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도 이 지점이었다. 영업이익 기준 70%를 차지하는 사업부를 떼어내면서 순자산으로는 20% 가치만 쳐줬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번 상속 및 증여세법에 따라 수익 가치가 최대 60%만 반영되다보니 결국 모비스 분할법인의 가격이 왜곡됐다는 게 주주들의 주장이다.
김 소장은 "기업들이 '우리는 합법적인 절차를 따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해도 주주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합병 기업이 최대주주와 관련된 경우 공정가격의 중요성이 더욱 엄정히 요구된다는 점을 기업이 인식하지 못했고, 이에 따른 절차적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류 대표 역시 "정부와 사전에 교감을 나누고 합법적 절차를 거쳐 분할합병안을 내놨다고 해서 주주들이 찬성표를 던져주는 시대는 지났다"며 "예전엔 기업이 규제자(정부)만 신경쓰면 됐지만 이제는 주주는 물론 시장 참여자를 전반적으로 살피고 소통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주주와의 소통, 주주가치환원이라는 큰 명제로 연결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대모비스 합병 철회를 계기로 주주들의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주주자본주의'에 대해 기업들이 반감을 표시하고 있지만, 국내 자본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지난해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국내 기업 경영윤리는 평가대상 137개국 중 90위에 머물렀다. 기업 이사회의 효율성(109위)과 소액주주 이익보호(99위)는 최하위권이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국내 대기업집단의 주요 상장사 이사회에서 이사가 안건에 대해 반대나 보류 의견을 낸 비율은 0.3%에 그쳤다.
류 대표는 "주주들과의 소통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침이 없다"며 "중장기적으로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주주와 신뢰관계를 쌓아둔다면, 앨리엇매니지먼트같은 단기투기·헤지펀드성 주주가 공격해왔을때 경영진과 같은 편에 서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소장은 "국민소득 4만불 시대로 가려면 법규뿐만 아니라 시장과 신뢰에 의한 규율이 자본시장에 자리 잡아야 할 것"이라며 "연성규범인 스튜어드십코드의 국내 정착이 시급한 까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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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6월 2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