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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인 고 변중석 여사의 11주기를 맞아 현대 일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에 모여 변 여사의 제사를 지냈다.
현대 일가 대부분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몽윤 현대해상화재 회장을 비롯해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 정몽진 KCC 회장 등은 물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도 참석했다. 현대백화점 오너 일가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동생인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을 포함한 50여명의 일가가 한남동으로 향했다.
때마침 투자은행(IB)업계에선 현대백화점 그룹의 한화L&C 인수검토 소식이 전해지며 화제가 됐다. 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이번 가족 회의에서 ‘한화 L&C’가 언급됐는지 여부에 따라 딜 향방이 판이하게 갈릴지도 모른다”란 이야기가 농담처럼 나왔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한화 L&C 인수 가능성이 거론된건 수개월 전으로 전해진다. 따로 IB 선정 과정없이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미 그룹 내 현금창고 역할을 하는 현대홈쇼핑 내 현금성자산과 예금을 포함한 유동자산만 8000억원에 달한 만큼 ‘실탄’은 충분한 상황. 이를 활용한 M&A를 다각도로 고심하던 현대백화점그룹은 한화 L&C를 그 중 하나로 점찍었고, 물밑에서 이런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가격 이견이 거론됐다. 모건스탠리PE가 지난 2014년 한화 L&C 인수 당시 가격은 지분 90% 기준 1400억원. 이후 한화첨단소재가 보유한 나머지 지분 10%를 콜옵션을 행사해 170억원에 추가 매입했다. 매각 측의 희망가격은 높은 반면 현대백화점은 일정 수준 매각가격 한도(Cap)을 정해놓고 협상에 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L&C는 인수될 당시 약 70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이 지난해 처음으로 1조원대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다만 지난해 영업이익이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여파로 다소 감소해 올해 실적 회복이 중요해졌다.
유통업계에선 PEF로 손바뀜을 거친 이후 범용 제품 보단 북미 기반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점을 특징으로 꼽는다.
한화L&C는 한화그룹 소속 당시만 해도 모회사 한화케미칼의 주력 제품인 PVC를 기반 창호‧장판‧바닥재‧벽지‧인조대리석 등 범용 제품을 주력 사업 모델로 꾸렸다. 그룹 독립 이후엔 PVC 의존도를 점차 줄이고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했다. 석영(쿼츠·Quartz)을 주 원료로 한 엔지니어드 스톤(강화 천연석) 브랜드 '칸스톤'이 대표적이다. 현재 해당 분야 한화 L&C의 점유율은 국내에서 6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주춤했던 설비 투자도 재개됐다. 한화첨단소재 내 '건자재사업부' 당시엔 그룹 전략이 건자재 분야 보다 자동차‧첨단 소재 분야에 집중돼 투자에서 소외됐었다는 평가다.
인수 이후 투자를 늘려 올 1분기엔 캐나다 내 제 2 생산 라인도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기존 장판‧바닥재‧샷시 등 수익성이 악화한 기존 사업부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다만 현대백화점으로서는 인수 주체를 ‘현대백화점’으로 범위롤 좁일 경우, 인수 가격만큼 시너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리스크로 꼽힌다. 홈리빙 사업을 꾸리는 현대리바트에 접목해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방안이 가장 먼저 꼽히지만 건설경기 향방에 따라 수익성 편차도 크다.
백화점 전체로 두고 보더라도 유리한 층에 매장 임대를 주는 정도 밖에 외형적인 시너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비용을 고려할 경우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다보니 딜 성사를 위해선 현대백화점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 일가’로 시너지 범위를 넓혀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당장 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고급 아파트 브랜드를 보유한 건설사들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한화 L&C는 올해 2월 공식 보도자료에서 대리석 ‘칸스톤’ 브랜드가 “최근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에 75% 이상 공급할 만큼 건설사가 선호하는 인테리어 자재”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삼성동 옛 한전 부지에 꾸릴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다. 과거 현대 리바트 인수 이후에도 소비자(B2C) 매출 보다 법인·계열사(B2B)향 매출 증가폭이 더 컸던 점도 배경으로 언급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스타일난다에도 접촉하는 등 사업을 가리지 않고 M&A를 검토하기 때문에 꾸준히 논의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면서 "이제와서 미니스톱을 인수하는 등 유통을 강화해 롯데·신세계를 추격하기 보단 차라리 범현대가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훨씬 더 투자자에겐 환영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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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8월 20일 07:00 게재]
입력 2018.08.21 07:00|수정 2018.08.23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