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친환경 시장은 현대차에 잠식
자금 소요 늘어나는데 현금 창출은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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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여기서 기아자동차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실패한 지난 구조개편에서 기아차는 사실상 오너 일가의 자금줄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기아차의 입지, 그룹의 중장기 사업 전략을 비춰볼 때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기아차가 또다시 중심에 서지 못하고 지원만 하는 역할에 그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3월 현대차그룹이 추진한 지배구조 개편에서 기아차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인수해 오너 일가의 자금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정 회장 부자가 추가 자금 마련을 위해 기아차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에 기아차에 대한 그룹의 지원 의지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다시 추진될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분할,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분할 사업부를 상장시키는 방안 등이 거론되는 정도다. 한 차례 실패했던 현대모비스 분할사업부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방안은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탓에 사실상 마지막 시도에 다시 꺼내긴 어렵다는 평가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지배구조 개편의 중심에 설 계열사가 현대차냐 모비스냐'의 고민으로 돌아간 시점에서 기아차 중요도는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며 "구조개편 과정에서 오너 일가에 자금을 마련해 줄 여력이 있는 곳이 기아차 정도밖에 없기 때문에 대규모 자금 지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의 시급한 현안은 제네시스의 글로벌 시장 안착, 현대차의 글로벌 시장 판매 회복, 미래차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등이다. 현대차그룹이 제네시스와 현대차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기아차는 그나마 강점이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 경쟁력을 뺏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는 제1 시장인 미국 시장의 판매 회복을 위해 SUV 신차를 대거 투입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올해 코나와 싼타페를 시작으로 미국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SUV 차량을 판매하고 있는데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투싼 페이스리프트, 베라크루즈 후속 모델, 제네시스 SUV 등을 추가로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가장 작은 A세그먼트부터 제네시스급 E세그먼트까지 풀 라인업을 갖추겠다고 선언하면서 픽업트럭과 SUV가 주력인 미국 시장을 공격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기아차가 주력으로 삼는 시장을 뺏어오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전기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의 주력은 수소연료전지차로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룹에서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았던 전기차 분야는 레이EV·쏘울EV·니로EV 등 기아차가 주로 생산해 공공기관 등에 납품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16년부터는 현대차가 아이오닉EV를 출시하며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기아차 일색이던 전기차 시장을 뺏어오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전기차에 관심이 없었지만, 글로벌 친환경 차량 분야가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현대차도 뒤늦게 합류하고 있다"며 "이 또한 사실상 기아차의 시장을 뺏어오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고 했다.
현대차에 주력 시장은 뺏기고 있는데 기아차의 자금 소요는 커지고 있다. 인도공장 준공 이후 납입할 잔금을 마련해야 하고,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삼성동 사옥에 대한 기부채납과 건축 비용 등에 대한 분담금도 내야 한다. 사옥 건립에 수천억원 이상의 추가 자금 소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각 계열사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금융사들은 현대차에 사옥건립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제안하고 있는 상태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기아차의 중단기 지출은 늘어나는데 사업을 통해 대규모 현금을 마련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다"며 "그룹 내 기아차의 위상, 그룹의 지원 의지 등을 비춰볼 때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매력을 느낄만한 요인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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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8월 10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