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화재 보유 물산 지분 매각하면 완료
물산 자사주 인수 현행법상 불가능
사실상 지주회사 외부 매각도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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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에는 순환출자고리 4개가 남아있다. 정부가 삼성이 연내 순환출자고리를 모두 해소할 것을 기대하는 가운데, 삼성그룹은 빠른 시일 내에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삼성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삼성물산이 지분을 직접 인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결국 시장매각, 즉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정도의 방안을 꺼내 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삼성물산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대주주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은 각각 삼성전기·삼성화재를 자회사로 두고 있고, 삼성전기와 삼성화재는 모두 삼성물산의 지분을 소유 중이다. 두 회사가 보유한 삼성물산의 지분은 약 4%, 시가로 9000억~1조원 규모다.
올해 중순까지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고리는 7개였으나, 삼성SDI가 삼성물산의 지분을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약 5600억원)하면서 4개로 줄어들게 됐다. 앞으로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의 지분만 사라지면 삼성의 순환출자고리는 모두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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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사옥매각을 통해 1조원가량의 여유 자금을 확보한 삼성물산이 자사주 형태로 사들이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현행법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는 평가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회사가 자기주식을 인수할 경우엔 반드시 공개매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정주주로부터 지분을 인수하는 것은 정부 출자기관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인수하는 경우와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현재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10여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삼성물산이 자사주 형태로 인수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국회에 계류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엔 상장사의 주식이 강제로 매각될 경우, 매수자를 찾을 수 없는 등 불가피한 사유에 해당하면 특정주주로부터 주식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만약 삼성물산이 자사주로 인수하는 방안이 불가능하다면 외부매각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그룹 내 사실상 지주회사라는 삼성물산의 위상을 고려할 때 4%에 가까운 지분을 맡길만한 국내외 전략적투자자(SI)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물산에 새로운 대주주가 생기는 것을 그룹 차원에서 꺼릴 것이란 시각도 있다.
그룹 계열사에 매각하는 것 또한 1조원에 자금 조달이 가능한 계열사가 사실상 없을뿐더러 새로운 순환출자고리가 생겨날 수 있어 선택하기 쉽지 않다. 삼성공익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이 인수하는 방안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공익재단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선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삼성SDI가 택했던 블록딜 방식, 또는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일가가 직접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직접 지분을 취득하면 지분율을 약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경영난을 겪던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에도 참여하며 그룹 주요 사안에 직접 사재를 출연하기도 했다.
다만 이 부회장의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인 점, 특히 삼성물산 지배력 강화에 대해 여론이 민감한 점 등을 고려한다면 쉽게 나서긴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삼성물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사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이 지분을 인수해 그룹의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투자자들 입장에선 가장 환영할 만한 일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현재 이 부회장의 상황을 비춰볼 때 현실화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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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삼성전기가 보유한 지분이 시장에 매물로 등장할 수 있다는 부담은 삼성물산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물산이 올해 양호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물론 지주회사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보다 오버행에 대한 투자자들의 부담감이 크다는 평가다.
국내 한 기관 주식운용 담당자는 "삼성물산의 펀더멘털 자체가 그리 나쁘진 않은 상황인데 주가는 오히려 3년 내 최저점에 머물러 있다"며 "삼성물산은 사업 자체보다는 지배구조 이슈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 회사이기 때문에 이 같은 불확실성이 빠른 시일 내에 회복돼야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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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8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