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측근 밭이던 中사업, 세대교체 가시권
"권 부회장 성과에 정의선 부회장 업적 판가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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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이 중국상품담당 조직을 신설하고 권문식 부회장(연구개발본부장)을 수장으로 임명했다. 중국 사업을 총괄하게 된 권 부회장은 정의선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중국 사업에 대한 정 부회장의 회복 의지를 나타냈다는 분석과 동시에 정몽구 회장 측근 인사들과 정의선 부회장 인사들의 세대교체가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대차의 제1 시장인 중국 사업은 국내 본사 중국제품개발본부에서 주도해 왔다. 중국제품개발본부는 정락 부사장이 도맡아 이끌어 왔는데, 권문식 부회장이 중국제품개발본부를 총괄하는 중국상품담당을 맡으면서 정 부사장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제품개발은 물론이고 브랜드 개발, 판매에 이르는 대부분 사업을 총괄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사실상 부사장급 조직이었던 중국제품개발을 현대차의 연구개발(R&D) 헤드급 인사에게 맡김으로써 조직이 격상됐다는 평가다.
현대차의 중국 사업 위기는 상수가 됐다. 한국과 중국 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둘러싼 갈등이 잦아들면 판매가 정상화할 것이란 현대차의 예상은 빗나갔다. 현지 브랜드와의 제품 격차는 점점 줄어드는데 유럽산 자동차와의 가격 격차도 이전만 못 한 상황이다. 중국과 미국, 현대차의 가장 큰 판매 시장에서 사업이 휘청거리면서 현대차 전체 수익도 타격을 입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현대차가 중국 사업에 대한 위기감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부회장급 인사가 중국 사업을 직접 맡게 되면서 기존 중국 사업을 담당하던 조직의 위상도 한층 높아지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대차 본사의 자체적인 중국 사업 강화 움직임을 두고 현재 중국 내 사업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BAIC)와의 갈등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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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지난 2002년 베이징자동차와 조인트벤처(JV) 형태로 중국에 진출했다. 합작법인인 탓에 현대차만의 독자적인 경영은 어려웠고 실제로 지난해 재무 권한을 쥔 베이징자동차가 협력업체에 납품 대금 지급을 거절하면서 생산 중단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베이징자동차가 현재 독일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와의 협력 관계를 돈독히 맺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의 중국 파트너 사업에 대한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 입장에서는 베이징자동차를 마냥 믿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조직의 격상이 베이징자동차를 배제하고도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갈 방안을 고심하거나 다른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마련하려는 조치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문식 부회장, 즉 정의선 부회장의 측근 인사가 위기의 상황에 등장한 것에 대해 정몽구 회장 인사들과의 세대교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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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현대차의 중국 사업을 대표하는 인물은 정몽구 회장의 가장 가까운 인사로 평가받는 설영흥 전 부회장(현 현대차그룹 중국 사업 담당 고문)이었다. 화교 출신인 설 전 부회장은 1999년 중국 사업 담당 고문으로 현대차에 영입돼 '꽌시(关系)'를 활용해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 안착할 수 있게 한 1등 공신으로 꼽힌다. 2014년 설 전 부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난 이후, 2015년 또 한 명의 정 회장 측근으로 알려진 담도굉 부사장이 중국 사업을 이끌어 왔다. 담도굉 부사장 또한 대표적인 화교 출신 기업인으로 최근까지 중국 사업을 총괄하다 현대모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 중국 사업에 대한 위기감은 외부에서도 수년째 느끼고 있었지만 정작 정몽구 회장은 '인(人)의 장막'에 가려 중국 사업을 직시하지 못해왔던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며 "중국 시장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의선 부회장의 핵심 인사인 권문식 부회장이 등장한 것은 정 회장의 가신 그룹과의 세대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했다.
기아차 재직 당시 K시리즈를 필두로 디자인 경영을 이끌었던 정 부회장은 최근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와 고성능 차량 'N시리즈'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아직 제네시스는 글로벌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상태고, N시리즈 또한 사업적 성과를 논하긴 이르다는 평가다. 권문식 부회장의 활약, 이에 따른 위기의 중국 사업의 회복 여부는 정의선 부회장의 사업적 성과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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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8월 2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