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트렌드는 미래차…IT가 주를 이뤄
국내 부품시장은 여전히 기계장치 중심
역행하는 현대차, 모비스 중심 자립 물음표
삼성•LG, 신성장동력이라기엔 지지부진
“국내 IT-완성차 업체간 협업 늘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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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역사의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자동차의 연료는 가솔린, 디젤에서 전기, 수소 등 포스트 내연기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자율주행과 모빌리티 서비스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고, 이종산업 업체들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잇따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전기전자 기업, 정보통신 기업, 자동차 기업들 간의 인수와 피인수가 쉴틈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자국 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크로스보더(Cross-border) M&A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무대는 펼쳐졌는데 국내 기업들은 주연은커녕 조연이 될 준비도 안돼 있는 상황이다. I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산업 구조는 낙후돼 있고 다수의 부품업체들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굴지의 대기업들은 자동차부품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웠지만 글로벌 시장의 변화 속도를 감안하면 그 활동은 기대 이하다. 이에 국내 업체들간의 협업을 통해 경쟁력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1. 자동차산업 헤게모니는 부품으로…M&A도 부품이 대세
최근 글로벌 자동차산업 M&A 거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삼정KPMG 자료에 따르면 2013년 354건에서 2017년 654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국경간 거래, 즉 크로스보더 딜(Deal)이 시장의 주요 거래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 거래액 기준으로는 자국내 거래를 뛰어넘었다. 자동차와 이종사업 간의 M&A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산업 M&A의 타깃은 부품이고 시선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맞춰져 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핵심 기술로 떠올랐고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가 내연기관의 대체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자동차 거래 역시 소유에서 공유로 옮겨지고 있다. 미래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밸류체인 구축이 필수가 됐고 기존 자동차 관련 기업들은 물론, 전기전자기업와 정보통신기업들도 시장의 주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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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업체들의 M&A는 미래차 기술로 집약된다. 다임러는 차량 공유 시장 선점을 위한 지리적 기반 확대를, 폭스바겐은 앱 기반 자동차 서비스 확대와 수소연료전지 기술 강화를 전략으로 삼았다. GM과 포드는 자율주행, 차량 공유 등을, 토요타는 자동차와 미래 주택의 연결성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완성차 업체들의 최근 M&A 대상을 살펴보면 IT, 미래차, 모빌리티 관련 기업들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자동차 M&A의 주요 주체로 떠오른 글로벌 부품업체들은 부품사업 확대와 미래차 시장 대응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세웠다. 콘티넨탈은 자율주행, 사이버보안, 탐지 및 이동성 기술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마그나는 파워트레인과 전장 사업을 확대하고 있고 덴소는 자율주행과 모바일 연결성 기술을 강화하고 있다.
사모펀드(PEF)들이 자동차 부품사 M&A 시장의 큰 손이 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지난 2016년 닛산으로부터 자동차 부품 자회사 칼소닉칸세이를 4000억엔에 인수했다. 올해는 칼소닉칸세이를 통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부품 자회사 마그네티마렐리를 인수하기로해 세계 최대 부품업체 탄생을 예고했다. KKR은 LS오토모티브 지분 47%를 사들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한온시스템의 지분 50.5%를 갖고 있는 한앤컴퍼니는 한온시스템을 앞세워 지난 9월 마그나의 유압 제어 사업부문을 12억3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이어 에너지 저장기술 관련 전문 투자회사인 볼타에너지테크놀로지와 제휴를 맺고 솔리드파워 투자자로 참여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PEF들이 연관성 있는 자동차부품사들을 사들이면서 사실상 자동차부품그룹을 만들고 있고 단순히 투자회수(exit) 목적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다만 모든 부품들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미래차와 관련돼 있는 부품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전했다.
2. 여전히 기계장치 중심인 국내 부품업계…“매력 없다”
자동차부품에 대한 전략적투자자(SI)와 재무적투자자(FI)들의 관심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에선 그 열기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매물이 많이 나오고는 있지만 매력이 없고 잠재적 인수 후보들은 괜찮은 매물을 살 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기존 사업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커지면서 국내 부품사들의 문의가 굉장히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이들은 전기차나 수소차 관련 사업으로 확장하고 싶어하는데 사실 자금력도 없고 지원받을 곳도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은 미래차를 위한 생태계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국내 자동차부품업체들이 현대자동차에 종속돼 있는 게 현실이고, 기술력 역시 단순 부품에 치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PEF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사 인수를 검토 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현재 시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매물이 자동차 부품회사인데 국내사 대부분은 현대차 비중이 가장 크고, 단순 부품 제조에 지나지 않는다”며 “과거에는 현대차 납품업체라면 좋은 점수를 줬겠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지금은 투자회수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재 들여다보고 있는 자동차 관련 기업 매물만 5~6곳인데 대부분 국내 부품사인데 이들 기업에 대해선 투자할 생각이 없다”며 “오히려 중국향(向) 전기차 관련 부품사를 보고 있는데 그게 투자 현실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국내 부품업계는 현대차 실적에 따라 웃고 운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중에서 주문자상표 부착생산(OEM) 매출액 기준 글로벌 톱 50에 들어가는 곳은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만도, 한온시스템 등 네 곳뿐이다. 만도와 한온시스템이 그나마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고는 하나 이들 역시 현대차 비중이 작지 않다. 또 지속적으로 해외 유수의 부품업체들을 사들일만한 재무역량을 갖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3. 부품사 버리는 글로벌 완성차… 트렌드 역행한 현대차
칼소닉칸세이는 닛산의 계열사 가운데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었다. 매출 가운데 닛산에 대한 납품 비중이 80%가 넘었다. 닛산은 칼소닉칸세이를 매각했다. 부품업체와 협업하며 자동차 품질 향상을 추구하는 일본의 '부품 계열화' 형태의 자동차 개발과정에서 벗어나 자율주행이나 전기자동차(EV) 개발을 위한 결단이라는 평가다.
FCA의 입장도 같다. FCA는 지프, 마세라티 등 고급 브랜드를 중심으로 전동차 라인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대한 투자비를 마련하고 부품 외주화로 원가 절감도 모색하기 위해 마그네티마렐리를 매각하기로 했다.
이처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부품 수직 계열화에서 탈피하고 있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수직 계열화의 장점보다 고비용 구조, 기술 경쟁력 약화 등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 부품업체들은 글로벌화한 소수 업체를 중심으로 통합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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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이 트렌드에 역행하고 있다. 토요타의 덴소를 목표로 현대모비스를 키우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덴소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계열사의 통합을 중점에 둔 M&A를 펼쳐왔다. 현대차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현대다이모스와 현대파워텍이 합병하기로 했고, 이후 신용등급이 떨어진 현대위아와의 합병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종적으론 현대모비스 산하에 모두 모일 가능성이 크다.
현대모비스는 글로벌 부품업계에서 7위에 이름을 올리고는 있지만 현대차 간판을 떼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최근 전략 발표를 통해 현대모비스의 고객 다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부품사 개별적으로 생존하기 쉽지 않고 현대차가 직접 지원을 해주기도 어렵다면 자생력을 키우라는 얘기다.
문제는 타이밍과 현실성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업계 트렌드가 바뀌지 않았을 때 미리 고객 다변화에 나서 트랙레코드를 쌓았어야 하는데 그 때는 현대차 살리기에 치중했다”며 “현대모비스가 현대차의 기술력 강화의 첨병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글로벌 부품업체로 거듭나는 건 쉬빚 않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고객 다변화는 좋은데 현대모비스가 다변화할 만한 기술력이 있냐는 건 다른 문제”라며 “수소차 경쟁력은 인정하지만 글로벌 트렌드인 전기차나 인공지능, IT서비스, 모빌리티 부문은 글로벌 톱티어(Top Tier)들과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현대차의 생존을 위해선 지금의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구축돼 있는 수직계열화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차 투자의 주체가 완성차업체인 현대차로 일원화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현대차가 그랩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미래차 관련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인 점은 주목할 만 하다.
4. 車전장 매물 줄어드는데 삼성·LG는 지금…
자동차 관련 M&A 시장에서 IT 업계가 큰 손으로 떠올랐다. 퀄컴의 NXP 인수, 인텔의 모빌아이 인수 등 자동차 메가 딜들이 대표적이다. 대형 IT업체와 완성차 업계의 M&A는 이뤄지지 않았다. 관련업계에선 앞으로도 서로 다른 산업의 톱티어간 M&A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내다본다.
대다수 IT 기업들은 차량용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센서 등 자율주행시스템의 기술 영역을 맡으려고 한다. 완성차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자율주행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한계에 직면해 있다. 미래차 개발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기 어렵고 IT 업계와 자동차 업계의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자동차 전장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삼성과 LG도 마찬가지다. 두 업체 모두 완성차 시장 진출 가능성이 언급되긴 했지만 이를 부인했고 앞으로도 현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하만을, LG전자는 ZKW를 인수하며 업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LG가 자체적으로 사업을 키우려다가 한계에 봉착한 후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조단위 M&A를 단행한 것처럼 산업 특성상 독자적인 확장이 어렵다”며 “전장사업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언제나 메가 딜에 뛰어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가 2016년부터 인수를 검토해 온 마그네티마렐리는 3년간 검토, 포기, 검토를 거듭했지만 결국 KKR에 뺏기고 말았다. 삼성전자가 마그네티마렐리를 인수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시장에서 그 같은 대형 매물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글로벌 완성차 및 부품업체들, PEF들의 인수 경쟁이 뜨겁다.
삼성과 LG가 전장사업을 어디까지 펼칠지, 펼친다면 사업이 안착할 때까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삼성 입장에선 이재용 부회장의 거취 문제와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의 불확실성 증대가, LG는 M&A에 대한 보수적 자세와 구광모 신임 회장의 행보가 변수로 꼽힌다.
국내 업체, 특히 현대차와의 협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확실하게 납품할 수 있는 완성차 업체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삼성과 현대차는 카오디오, 통합관리 앱, 커넥티드카 등 협업 사례가 늘고 있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은 에너지 밀도가 높고 안전하면서도 저렴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케케묵은 ‘자존심’보다 현실적인 ‘실리’가 우선이라는 생존 본능이 자동차 업계에서 발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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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1월 2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