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원칙중심의 회계처리에 부담 느껴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정부 기관도 없어
정부가 IFRS제도 하에 세부원칙 세워달라는 요구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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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 논란이 국제회계기준(IFRS) 제도로 옮겨 붙고 있다. 지난 2011년 국내에 도입한 IFRS제도의 철학과 현 정부의 감독시스템이 상충하다보니 이로 인한 혼돈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들과 회계법인들은 정부가 자본시장을 못 믿겠다면 지금이라도 직접 나서서 세부적인 회계 원칙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IFRS 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점이 거론되고 있다. 국회차원에서도 토론회를 열고 이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지난달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주최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판정이 남긴 교훈과 과제’ 토론회에서도 현 IFRS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다양한 지적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손혁 계명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IFRS의 중요한 특징은 원칙 중심의 회계처리로, 경영자에게 회계 선택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했다”라며 “많은 선행연구를 요약하면 기업과 경영자는 자신의 유인에 의해 국제회계기준에서 부여한 재량권을 남용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달리 말해 IFRS 제도 자체가 ‘구멍’이 많고 기업들이 이를 악용한다는 뜻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회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수긍한다.
IFRS 제도는 손 교수가 밝혔듯이 회계처리에 있어 경영자의 판단을 최대한 인정한다. 그만큼 경영진의 도덕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더불어 재무제표를 활용하는 투자자들이 회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가 있음을 가정한다.
하지만 최근의 일련의 정부의 감독방침이 IFRS 철학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감사부문 파트너는 “유럽에서 활용하는 IFRS 제도는 자본시장의 성숙도를 바탕으로 하는 제도다”라며 “경영진과 투자자에 대한 신뢰 없이는 제대로 시스템이 돌아가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만 하더라도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사가 목적성을 가지고 회계처리를 변경했을 수 있으나, 현 IFRS 제도 하에선 충분히 용인 될 수 있는 부분이란 의견이 많았다. 제도만 놓고 보면 문제 삼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회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의적으로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고 단정지었다. 상장폐지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이다보니 정부가 경영진의 재량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의 판단까지도 문제 삼았다는 평가다.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회계감리 선진화 방안’도 정부의 이런 생각이 반영된 대표적인 산물이다. 금융당국은 상장 전 기업의 회계처리 및 재무제표에 대한 감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기존에 한국공인회계사(한공회)가 담당하는 IPO 감리업무를 금융감독원이 하는 방안이 유력시 된다.
결국 IPO를 담당하는 증권사나 이를 감리하는 회계법인을 못 믿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증권사들은 백여 건에 달하는 상장 기업들을 몇 안 되는 금감원 인력으로 감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 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더불어 감리 받으려다가 상장 시기마저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 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최근 정부의 방침은 회사도 투자자들도 불신하는 행태다”라며 “자본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럴 바엔 차라리 IFRS제도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다만 이미 모든 기업들이 IFRS에 맞춰 회계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다시금 예전의 한국회계기준으로 돌아가기에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차선책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IFRS 체제 하에 새로운 회계 원칙을 세워달라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회사의 회계처리 방식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도 제대로 대답을 해주는 곳이 없다”라며 “지금이라도 금융감독원, 회계기준원이라도 나서서 기업, 회계법인과 함께 IFRS 체제 하에서 세부적인 회계규정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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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2월 0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