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구조조정 속 비주력 ‘패션’ 미래 관심
국내외 환경 변화에 패션업 전망 부정적
삼성물산, 패션업 철수 가능성도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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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패선사업을 대표하는 이서현 사장이 삼성물산을 떠났다. 세간의 관심은 이제 삼성 패션사업의 미래에 쏠리고 있다. 국내 패션업황 전망 자체가 어두운데다가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삼성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엔지니어링과 바이오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회사의 움직임에 미뤄 패션업 철수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동생인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사장은 서울예고,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해 패션에 큰 관심을 가진 여성경영인으로 유명하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해 2005년 제일모직 패션부문 기획담당 상무, 2009년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 2010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을 역임했다. 2014년부터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일선에 나섰다.
2015년말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한 직후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겸직 중이던 제일기획 경영기획담당에서 물러나고 대신 삼성패션의 단독 사장 자리에 취임해 그룹의 패션사업을 단독으로 이끌어왔다.
그랬던 이서현 사장이 단독 사장에 취임한지 3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 사장은 삼성패션 사장에서 물러나 내년 1월1일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신설되는 리움미술관 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장으로도 위촉됐다.
이서현 사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 동안 삼성패션의 캐주얼브랜드 빈폴 등 토종 브랜드를 키워왔다. 삼성이 3년간 공들인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도 이 사장의 작품이다. 실적 면에서는 지난해 업계 1위 자리에 오르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왔다는 평가가 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택한 에잇세컨즈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유통 채널 변화와 글로벌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해 그나마 남아있던, 과거 '제일모직'으로 대표되는 경쟁력마저 떨어뜨렸다는 냉정한 평가가 이어진다.
이서현 사장이 물러나는 배경에 대해선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 사장의 후임 사장 인사와 관련해서도 전해지는 바가 없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패션업계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지난 10월까지 전년 대비 5%가량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에 이서현 사장이 퇴진하는 것이 실적악화에 따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이 사장이 기존에 복지와 미술 쪽에 관심이 많았고 미술 부문 공백기가 너무 길어지면 안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리고 현재 사업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내년도 사업계획도 예년과 같이 수립 중이라고 덧붙였다.
투자금융업계에선 삼성물산의 사업 구조조정, 그 과정에서 부진한 패션사업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물산은 끊임없이 사업 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건설부문과 상사, 패션, 식음료와 레저 등 자체사업의 성장 기대가 크지 않다. 현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과 계열사인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생명 등의 지분으로 얻는 배당수익에 실적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삼성물산이 자체사업에서 수익성을 높이고 다른 계열사와의 역할을 정리하려면 비주력 사업을 중단하고 인력을 줄이는 등 효율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EPC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 신설, 서초사옥 매각도 그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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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은 비주력 중 비주력으로 꼽힌다. 삼성물산의 사업부분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패션은 6%에 불과하다. 매출액은 최근 3개년 연평균 1조700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 2016년 적자를 기록한 이후 2017년에 부진한 사업들을 정리하며 효율화 작업 끝에 327억원 흑자로 돌아섰지만 지난 1분기 다시 영업손실로 돌아섰고 지난 3분기에도 180억원의 손실을 냈다.
패션업 부진은 삼성물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패션업 전반의 업황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국내 브랜드의 경쟁력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 국내 패션업계는 유통 채널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글로벌 브랜드력을 갖춘 해외 브랜드와의 경쟁에서도 밀렸다는 평가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온라인을 통한 직구 증가와 글로벌SPA의 시장점유율 증가로 국내 패션업계의 경쟁력은 날로 떨어지고 있고 브랜드력에 따라 업체별 실적은 양극화가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브랜드업체는 상품 판매영역과 지역의 확대, 브랜드 리빌딩이 시급한데 사업전반의 부진을 이겨내기에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게 최근 대기업들의 패션업 철수, 또는 다른 사업으로의 확장이다. SK그룹은 SK네트웍스 패션사업을 현대백화점 한섬에 매각했고, LF그룹은 부동산신탁 등 사업영역을 확장 중이다. 모두 패션업이 장기적으로 밝지 않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삼성물산이 패션부문에서 정리한다면 회사가 보유한 글로벌 브랜드 판권은 꽤 매력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패션·유통 대기업들이 수입 브랜드 사업에 주력하는 것은 안정적으로 실적을 올릴 수 있는데다 마케팅 등 운영 비용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장기 불황으로 패션시장 여건이 좋지 않아 위험부담이 큰 자체 신규 브랜드 개발보다 검증된 해외 브랜드 사업에 매달리는 게 낫다는 것이다. 패션 대기업 간 수입 브랜드 판권 전쟁은 업계 내에서 매번 화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발망(Balmain), 비이커(Beaker), 콜롬보(Colombo),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띠어리(Theory), 톰브라운(Thom Browne), 토리버치(Tory Burch), 발렉스트라(Valextra) 등의 브랜드 라이선스를 갖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을 보유한 의류업체들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라이선스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한섬이 SK네트웍스 패션부문 인수를 결정하게 된 배경도 타미힐피거, 클럽모나코, DKNY, CK 등 해외 브랜드”라며 “신세계나 현대백화점이 보기에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브랜드들은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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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2월 07일 13:5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