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뱅 비전펀드, 총 27억달러 투자
IPO보다는 지분 매각에 무게 실려
몸값 커진 쿠팡 감당할 SI 많지 않아
"영역 확대" 아마존이 유력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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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에 들어 유통업계는 매년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고 있다. 2016년에는 대형 유통기업과 소셜커머스 간의 가격 전쟁이 펼쳐졌고, 2017년에는 아마존, 알리바바로 대표되는 신유통(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매장, 물류 인프라가 신기술로 통합된 유통 비즈니스)이 부상했다.
올해는 리테일테크가 화두였다. 소매(Retail)와 기술(Technology)을 합성한 신조어인 ‘리테일테크’는 기존 유통산업에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로봇 등 최신 ICT 기술을 결합해 유통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기술을 말한다.
내년에는 모든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국내 기업들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온라인몰을 전담하는 신규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고 롯데그룹도 이커머스 사업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기로 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도 커머스 사업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 소프트뱅크 손 떠나 비전펀드로 넘어간 쿠팡
정작 올해 유통업계를 뜨겁게 달군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국내 소셜커머스 1위 쿠팡이다.
최근 쿠팡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0억달러(약 2조2570억원)의 투자 유치를 받았다. 단일 투자로는 국내 인터넷 기업 사상 최대 규모다. 앞서 2015년 6월 소프트뱅크그룹의 10억달러 투자 이후 3년여만에 소프트뱅크 이름으로 이뤄진 투자다. 쿠팡은 투자 유치금을 바탕으로 물류 인프라 확대, 결제 플랫폼 강화,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투자 배경에 대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김범석 쿠팡 대표가 보여 준 거대한 비전과 리더십은 쿠팡을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리더이자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터넷 기업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쿠팡은 올해 매출이 2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15년 당시 50억달러로 평가 받았던 쿠팡의 기업가치는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90억달러로 상향 조정됐다.
소프트뱅크의 쿠팡 누적 투자 규모는 ‘30억달러’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투자 주체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다. 소프트뱅크는 3억달러의 손해를 떠안고 쿠팡에서 이미 빠져나왔다.
소프트뱅크는 2015년 전환상환우선주 방식으로 쿠팡에 10억달러를 투자하며 지분 21.83%를 확보했다. 그러다 지난 2분기 쿠팡 지분 전량을 7억달러에 비전펀드로 넘겼다. 비전펀드는 소프트뱅크로부터 넘겨 받은 지분에 이번 투자금 20억달러를 더해 27억달러어치의 쿠팡(더 정확히 말하면 쿠팡 모회사인 미국법인 쿠팡LCC) 지분을 확보했다. 대략 60%로 추정되는데 쿠팡 최대주주는 창립자인 김범석 대표에서 비전펀드로 변경됐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손정의 회장이 전 세계 투자자로부터 1000억달러의 자금을 조성해 만든 세계 최대 기술투자 펀드인데 중동 '큰 손'이 핵심 투자자다. 450억달러(투자 비중 48.4%)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가 투자했고 소프트뱅크(30.1%), 아랍에미리트(UAE) 무바달라개발공사(16.1%) 순이다. 비전펀드는 1000억달러 가운데 44%가 부채로 구성돼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와 무바달라개발공사는 비전펀드에 자금을 댈 때 일부만 출자하고 나머지는 회사채에 투자했다. 비전펀드가 운용되는 동안 연 7%의 확정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비전펀드는 손정의 회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투자 책임자는 도이체방크 출신의 악샤이 나헤타(AKshay Naheta)다. 나헤타는 비전펀드를 통해 상장기업 투자와 기업 M&A 등 운용 전략을 책임지고 있다. 비전펀드는 미국 벤처 전체를 먹여 살릴만한 돈을 뿌리면서도 소프트뱅크 영업이익 급증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 업계 경쟁강도 격화 전망…IPO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쿠팡 투자 주체가 소프트뱅크에서 비전펀드로 변경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3년은 손정의 회장이 쿠팡의 가능성을 보고 적자 리스크를 감내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3년은 비전펀드 출자자들이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인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쿠팡 엑시트 전략이 주목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쿠팡에 투자한 비전펀드의 운영 기간은 12년으로 앞으로 10년 남았다. 그 안에 쿠팡의 기업가치를 끌어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쿠팡은 지난 1분기말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를 통해 블랙록·피델리티·웰링턴 등 해외 투자기업으로부터 2억3000만달러를 유치했다. 특히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014년 3억달러에 이어 이번에 추가로 투자했다. 쿠팡은 프리IPO 과정에서 2020년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쿠팡의 IPO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가장 문제였던 유동성 문제에 숨통이 트였고, 김범석 대표 입장에선 상장으로 인한 경영권 위협이 달갑지 않다. 무엇보다 2020년까지 쿠팡이 상장을 할 만한 기업가치 제고, 그리고 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 대규모 투자를 천명한 국내 유통 ‘빅2’ 롯데와 신세계, 기존 오픈마겟 강자인 이베이코리아와 11번가, 커머스 강화에 나선 네이버와 카카오 등으로 업계 내 경쟁 강도는 한층 격해질 전망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티몬이 상장을 추진했다가 포기하면서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의 상장 바로미터는 없는 상황이고 업계 전반의 경쟁이 한층 격해질 것을 감안하면 소셜커머스 업체의 밸류에이션 측정은 쉽지 않다”며 “국내든 해외든 당분간 상장을 추진하기엔 쿠팡의 체력이 너무 약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유치자금 중 일부가 재무구조 개선에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쿠팡의 영업손실은 6390억원, 미지급금은 4570억원, 매입채무는 4490억원에 이른다. 거기에 프리IPO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 지분 매각 가능성 커…눈길은 결국 아마존으로
비전펀드의 만기가 끝나면 소프트뱅크가 새로운 펀드를 조성해 쿠팡에 재투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전펀드 자금을 기다리는 기업은 쿠팡만이 아니다. 김범석 대표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선 결국 지분 매각이 가장 확실하다. 쿠팡을 비전펀드로 넘기고, 그 비전펀드가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쿠팡에 20억달러를 더 투입한 것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손정의 회장의 ‘빅 픽처(Big Picture)’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장 쿠팡의 기업가치는 90억달러가 됐다. 매물로 나올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국내 전략적투자자(SI)는 많지 않다. 한 때 11번가 인수를 검토했던 롯데와 신세계가 고민을 할 수 있겠지만, 이전에 비해 쿠팡의 덩치가 커져 쉽사리 결정하기 어렵다.
눈길은 자연스레 해외 SI, 특히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Amazon)으로 향한다.
아마존은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려고 한다.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일본을 제외하면 상황이 녹록지 않다. 중국에선 자국 회사인 알리바바가 독보적이다. 아마존은 중국과 밀접한 동남아시아에서도 이렇다 할 기반을 닦지 못했다. 인도에선 월마트와 알리바바와 경쟁하고 있다.
경쟁사들이 진출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아마존의 아시아 공략에 주요 거점이 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쿠팡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은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Last Mile Delivery)과 오프라인 물류센터다.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는 유통업체의 택배 상품이 목적지에 전달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요소를 뜻한다. 안전과 편의성, 고객 만족과 감동이 해당된다. 아마존이 보기에 쿠팡은 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업 중 하나다.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자체 유통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쿠팡은 올해 로켓배송 상품 품목수 400만개, 하루 배송되는 로켓배송 상자가 100만개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웬만한 물류전문기업 수준이다.
쿠팡은 물류센터 규모를 내년에 2배 이상 확장할 계획이다. 쿠팡은 대구시에서 첨단물류센터를 추진하고, 전기 화물차 배송도 먼저 도입한다. 경기도 고양에는 초대형 '풀필먼트 물류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풀밀먼트는 판매 상품 적재부터 재고 관리, 포장, 출하,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처리하는 체계다. 이는 아마존이 도입한 개념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쿠팡의 기업가치는 계속 올라갈 수 있겠지만 쿠팡이 구축한 오프라인 물류망은 아마존에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며 “아마존이 쿠팡을 인수해 브랜드 가치와 물류 경쟁력 결합한다면 과거 이베이가 옥션, 지마켓을 인수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국내 유통업계 전체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비전펀드의 엑시트 전략이 반드시 쿠팡의 경영권을 포함한 매각이 아닐 수도 있다. 인수자와 피인수자, 투자자와 국내 여론을 감안하면 국내외 대형 SI에 지분 일부를 매각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을 수도 있다. 이 역시 국내 유통업계에 미칠 여파는 만만치 않다.
비전펀드의 스타일을 보면 쿠팡 재투자는 손실 최소화를 넘어 투자 효과 극대화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아마존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때문에 인도 전자상거래 선두 자리를 경쟁자인 월마트에 내줬다. 월마트는 인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플립카트(Flipkart)’의 지분 77%를 160억달러에 사들였다. 비전펀드는 지난해 8월 플립카트에 25억달러를 투자했는데 이번에 월마트에 40억달러를 받고 지분을 팔았다.
영원한 엔젤투자자는 없다. 쿠팡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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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2월 12일 07:00 게재]